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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성지순례

성지순례 30 -(5) 황사평 성지

작성자조화|작성시간25.03.30|조회수651 목록 댓글 0

 

3월 12일(수) - 셋째 날

 

제주도 성지순례 3일째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비교적 여유롭다. 오전에 황사평 성지와 김기량 순교비를 순례하고 오후에 비행기를 타면 된다. 그래서 숙소 출발 시간은 8시로 하고 7시에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자매님들 방에 갔는데 창가에서 보이는 일출이 아름답다.

숙소 용두암 캐빈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요셉 형제님 이렇게 하면 하이쿠가 되나요?

 

둥근 불덩이

세상을 밝히려는

주님의 열정

 

여행시 함께 숙소를 이용할 때는 사람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서 습관상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럽다.

아침식사는 어제 아침처럼 따로 준비하지 않고 간단히 때운다. 어제 저녁 식사가 너무 푸짐하여 손도 대지 않고 남은 호박 밥에 과일을 곁들여 아침식사로 충당했다. 한 끼를 때운 것이다. 이처럼 자매님들은 알뜰하다.

아침 햇살이 펴질 때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 오늘 일정에 여유가 있어 첫날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대정읍에서 추사관(월요일 휴관)을 가지 못해서 아쉬워 오늘 가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가까운 삼성혈을 가기로 했다. 다시 숙소로 올 필요가 없도록 짐은 다 챙겨서 8시 출발.

 

삼성혈(三姓穴)은 한라산 북쪽 기슭 제주시 삼성로에 위치한 탐라 개국신화가 서려있는 곳이다.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으며 일명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태고 시대에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나중 梁씨로 바꿈), 부을라(夫乙那)의 세 성인(聖人)이 이 곳 세 웅덩이에서 태어나 벽랑국의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탐라국(耽羅國)을 세워 제주도 역사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1526년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세 성씨의 후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면서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는 천인(天人)이 하강하여 시조를 낳는 북방계 신화와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 신화인 남방계로 구분되는데 모두 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강(天降) 신화이다. 그런데 제주도 삼성혈 신화는 지출(地出) 신화라는 특수성을 가진다.

삼성혈 입구

20분 정도를 달려와서 문 앞에 들어서니 이를 어쩌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다. 기다리다보면 성지순례에 시간이 쫓길까봐 돌아서기로 했다. 아쉬움에 사진자료 하나 첨부한다.

삼성혈

황사평 성지는 마을 가운데를 거쳐야 이른다. 제주도도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민이 떠난 빈 집이 늘어나는 것 같다. 독특한 화산석 담으로 둘러싸인 묘지와 돌담길의 모습은 제주도의 옛날의 전통을 그대로 전해준다.

주인이 떠난 빈 집
제주도의 전유물 화산석 돌담
제주 전통 묘지
황사평 성지 - 신축교안으로 희생된 순교자들의 안식처

 

제주도 제주시 기와5길 117-22

 

 

황사평(黃沙坪)은 일명 황새왓이라고 해서 조선시대부터 군사를 훈련시키는 들판인데 풍수지리상 동남쪽에서 황새가 날아와 앉은 형국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신축교안(관덕정 성지 참조)으로 관덕정 등지에서 희생된 천주교도들의 시신은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별도봉(別刀峯)과 화북천 사이 기슭에 옮겨 가매장했고, 그 중 연고가 있는 분묘는 대부분 이장해 가고 무연고 시신들만 남게 되었다.

1902년 8월 제주를 방문한 뮈텔(Mutel) 주교는 제주목에 매장지 확보를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마침 프랑스 공사와 조선 조정과의 교섭 과정에서 피살자의 장지(葬地) 문제가 1903년 11월 17일 최종 타결되어 황사평을 양도받아 이장하게 되었다.

 

총 면적이 약 18,000평의 황사평은 현재 신축교안 순교자 묘역뿐만 아니라 제주교구의 신자의 공동묘지로도 사용하고 있다.

1980년 기존 순교자들의 묘를 평장으로 조성했다가 1995년 11월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순교자 묘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교구 성직자 묘지를 곁들여 조성하여 초대 교구장인 현 헤롤드 대주교와 서귀포 본당 주임신부였던 나 토마스 신부의 유해를 성직자 묘지에 이장했다.

  1998년 제주에서 활동한 외국인 성직자들을 기리는 공덕비와 제주 출신 최초의 신자인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순교비도 세웠다. 2008년 제주교구는 황사평 순교자 묘역 앞에 납골당 건설 작업에 착수해 아름다운 봉안당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9시가 약간 지나 황사평 성지에 들어선다. 들머리에는 황사평 비가 나오는데 濟州敎區 黃蛇坪 殉敎者 墓域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黃沙坪의 ‘沙’가 여기는 ‘蛇’로 되어 있다. 황사평이라는 이름이 뱀이 또아리를 튼 모습에서 왔다는 설을 나타내 주고 있다. 제주도에는 맹수가 없어 가장 두려운 것이 뱀이다. 그리하여 뱀을 토템으로 여긴 까닭일까? 김녕리에도 김녕사굴(金寧蛇窟)이 있다.

순교자 묘역비

입구에는 둘레길 표지판과 함께 흰색 입간판 셋이 있는데 이들은 독립지사 이운강, 최정숙, 김중현의 공적기록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멀리 숲길 맞은편에 성가정상이 있고 그 뒤에 교구 공동묘지와 순교자 묘역이 있다. 길가 언덕에 성모상도 있다.

황사평 성지 입구
순교자 묘역 가는 길
묘역 앞 성가정상 성모상

교구신자 일반 묘역

 

성가정 상 뒤편의 순교자 묘역으로 들어가는 좌우 넓은 들판에는 교구의 공동묘지로 일반 신자들의 묘가 수백 기가 들어서 있다. 묘비는 아주 간단하게 십자가 아래 큰 글자로 된 속명이 있고 그 옆 괄호 안에 작은 글자로 세례명을 기록하고 있다.

순교자 묘역 가는 길 좌우 일반묘역

 

 

순교자 묘역

 

 

순교자 묘역에 이르니 뒤편에 대형 십자가가 서 있고 그 좌우에는 대천사가 시립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 순교자 합장묘를 중심으로 앞에는 제대가, 왼편에는 제주도 첫 순교자요 제주의 사도라고 부르는 김기량 순교비가 있다. 

 

신축교안 희생자 28위 합장묘 (왼쪽은 김기량 순교비)
묘 뒤편 십자가
제대

 

김기량 순교비

 

김기량 순교비 뒷면에는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생애와 순교 사적, 그리고 비를 세운 일자 등이 새겨져 있다

김기량 순교비 순 교비 뒷면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이 고장 출신으로 처음 영세 입교하여 이 땅의 복음화에 힘쓰다가 마침내 장엄한 순교를 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드린 분이다. 함덕리 출신 어부였던 그는 1856년 서해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중국 광동성 해역까지 갔다가 영국배에 구조되어 홍콩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페낭 신학교 조선인 학생을 만나 영세를 받고 2년 뒤 귀국하게 된다.

귀국 후 그는 페롱 신부와 최양업 신부를 만나 교회 서적을 얻어 제주도에 와서 40여명을 입교시켰다. 1868년 병인백해 때 새로 입구한 교들을 영세시키려고 육지에 갔다가 통영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가슴에 대못이 박혀 처형되었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하느님을 증거하며 장렬한 순교로 하느님 품에 안겼다. 제주 선교 100주년에 즈음하여 1898년 9월에 이 비른 세운다.

이상이 비 뒷면의 내용이다.

 

좌우 대천사상 앞에는 신축교안 당시 희생자의 개인 묘비가 각각 4기씩 서 있다. 아마도 합장묘 성역화 이전의 비식일 것으로 추정된다.

申 末加利多(말가리다), 김 도마, 申 亞奧斯定(아오스딩) 등
徐 瑪利亞(마리아), 崔 堯王(요한) 등

순례단 일행은 순교자를 위한 기도를 함께 바쳤다.

시복시성 기도문
우국지사 강평국 아가다 묘 순례길 안내

 

성직자 묘역

 

 

순교자 묘역 오른쪽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초대 교구장인 현 헤롤드 대주교와 서귀포 본당 주임신부였던 나 토마스 신부 등 제주교구 성직자들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뒤편에는 화해의 탑, 공덕비, 애국지사기념비 등이 있다.

성직자 묘역 전경

화해의 탑은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참된 화해와 상생의 길을 걸어가자는 취지로 1921년 제주교구에서 세운 것이다.

 

공덕비는 파리 외방전교회와 성 골롬반 선교회 성직자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1899년 공식적으로 선교사가 파견된 후 100년 동안 50명의 소속 성직자들이 제주도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중 선종한 16명이 사제들의 이름을 새겼다.

 

가톨릭 애국지사 기념비는 일제강점기 애국운동으로 건국훈장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은 애국지사 강평국(아가다), 고수선(엘리사벳), 최정숙(배아트릭스) 세 분의 기념비이다. 이들은 한평생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분들로 1922년 제주교구에서 세운 것이다.

 

가톨릭 애국지사 기념비
선종 교구 사제들의 묘

성직자묘에는 지금은 모두 7분이 잠들어 있다.

나 토마스 신부 김병준(요한) 신부
임승민(요셉) 신부 초대 교구장 현 하롤드 대주교
하승조(바오로)신부 황페리(프란치스코) 신부
김창훈 다니엘 신부

 

십자가의 길

 

황사평 성지의 십자가의 길 14처는 엄청 넓은 잔디 광장 둘레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관련 인물상을 흰색 제대 위에 주황색으로 큼직하게 조성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 좌우 둘레
14 처 중의 일부

 

성모칠고

 

성모님의 7가지 고통, 곧 성모칠고는 십자가의 길 앞쪽에 붙여 십자가의 길 14처와 대조적으로 나지막한 자연석과 회양목 떨기로 조성되어 있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으신 피에타가 중심이 되고 있다.

성모칠고 공원
피에타

 

 

이제 성지 왼쪽 뒤편에 있는 봉안당으로 간다. 가는 길에 성지의 모든 것을 품으시는 예수님 부활상이 탐스러운 황귤 나무와 함께 서 계신다.

 

예수 부활상
황귤나무들

 

봉안당

 

2008년에 조성한 황사평 성지 납골당은 자유롭게 참배할 수 있는 완전 개방형이다. 주변 잔디밭 공원에 어울려 매우 시원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로마식 아치형 문을 형상화한 봉안당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더 많은 시설들
서가식 봉안처
형형색색의 추모들
봉안당 외부 공원

순교자 묘역에서 함께 순교자를 위한 기도를 바치자 10시 미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바쁜 걸음으로 소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지에서 바치는 미사는 뜻이 깊다. 그러나 성지순례를 다니다보면 미사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기껏 주일미사 시간만 사전에 알아 참례하기가 일쑤다. 그것도 교중미사는 드물고 대부분 새벽미사이다.

오늘은 용케도 미사 시간아 맞아서 행운이다. 만약 아침에 시간이 되어 삼성혈에 들어갔다면 오늘 미사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주님께서 배려하신 일인가 하는 생각이다. 무참히 떨어지는 동백나무가 꽃송이를 떨어뜨리고 있는 성당에 도착.

 

 

황사평 성지 성당

 

소성당이라고 이름하는 가건물로 주위에는 부속 시설로 컨테이너가 몇 동 있다. 하지만 성당 바로 앞 꽃송이에 싸여 오른손에 고상을 들고 왼손에 승리의 팔마 잎을 든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상이 당당하다.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상
소성당

성당 내부는 좁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전면 십자고상과 제대 좌우로 예수성심상과 성모자상이 배치되어 있고 앞쪽 벽에는 103위 성인화와 자비의 예수상이 좌우에 있고 아담하고 아름다운 십자가의 길 14처가 걸려있다.

성당 내부
예수성심상 성모자상
벽면의 성화와 십사처
자비의 예수님 상

미사 참례자는 우리 일행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 일행 중 장 라파엘 회장이 독서를 맡았다. 성지 주임 신부님은 퍽 젊으신 분인데 강론 또한 감명이 깊었다.

원래 성지 신부로 올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발령을 받고도 마음이 쉽게 내키지 않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열성을 다해 완수하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요, 사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당 교우들도 서로 이해하고 사제와 협력함이 필요한데 자신은 이 성지에서 3천명의 신자(?)들과 함께 있어도 불평 한 마디 들은 적이 없다는 유머도 곁들인다. 물론 피봉안자나 묘지의 피장자들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더러 가다가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겨지면, 시력을 잃어 그렇게도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는데 비하면 두 눈을 가진 내가 얼마나 행복하며, 평생을 병상에서 보내는 사람에 비하면 두 다리를 가진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생각하라는 식이다.

금년 본당 미카엘 신부님이 봉안당 성지 담당을 발령이 났을 때 신자들이 없어서 외로우시겠다고 했더니 300명이나 되는 신자가 있다고 대답하신 일이 생각난다.

미사를 마치고 개인 강복도 받고 황사평 성지 순례를 마감했다.

 

양창조 미그도니오  신부님

 

새벽 나누어 마시는 - 황사평에서 -

 

하늘 아는 죽음은

늘 수직으로 깨어나는 것입니까

뜨거이 죽어 싱그러이 깨어나는 이들의

해 지고 해 뜨는 바다에는

씻은 저녁 씻은 아침 가득합니다.

나의 가슴에도

아침 돋아나는 상처 있기를

나는 맑은 바닷소리 한 가닥에 닿아

방황의 젖은 옷 말립니다.

알뜰히 가난한 사람끼리

새벽 나누어 마시는 아침, 나는

온 몸을 자비로운 햇살에 풀며

한 점 미소로 깨어나기를

한 점 사랑으로 살아나기를 (김영수)

 

 

10시 40분. 이번 순례의 마지막 성지 김기량 순교현양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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