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곧 축구는 발을 이용해 구형의 공을 차서 상대편 골대에 넣어서 득점하는 게임입니다. 전세계에서 인기있는 유일한 스포츠로 비견할만한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World Cup(프랑스어로 Coup du Monde)들이 있지만 그냥 World Cup이라고 할 때에는 축구 World Cup을 떠올릴 정도죠.
축구가 왜 이렇게 전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었을까요? 영국이 세계로 뻗어나가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연방 국가들에는 근대 축구보다 축구에서 핸들링 규칙이 완화되어 갈라져 나온 럭비(혹 미국은 American Footbal)가 먼저 전래되었으니 그건 아닌거 같고요. 그것보다는 축구라는 스포츠가 근대 영국에서 정비되기 이전에 세계 각지에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지에 있었다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 다발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구나 handball[한트발]처럼 손을 이용한 구기 종목에는 공을 들고 달려가면 게임이 성립되기 어려우므로 드리블해서 가고 공을 든채로는 몇발짝 걸을 수 있고 등등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축구의 드리블 규칙은 간단하죠. 팔을 안쓴다. 끝~ 또 상대와 몸으로 부딪치고 공을 있는 힘껏 발로 차는 행위는 폭력성의 분출로 그 자체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축구는 기원전 고대 중국에서 행해졌으며 AD 500 부터는 속에 머리카락을 채워놓은 공을 이용했다고합니다. 당나라때의 축구는 깃대를 세워놓고 그 사이로 공을 차넣었다고하니 오늘날의 축구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죠. 또 신라의 김유신, 김춘추가 공 차다가 옷이 찢어져 여동생이랑 이어주고 어쩌고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원전 그리스도 축구가 있었는데 이것이 로마에 전래되었고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로마군인들에 의해 브리튼에도 전래가 되었는데 아일랜드에는 이미 축구가 있었다고합니다. 7세기 일본과 14세기 이탈리아에 축구(calcio)가 있었다고 하니 정말 세계 각지에 축구 혹은 그와 유사한 발로 공을 차는 놀이가 있었네요. 원조가 어딘지 가리는건 더 이상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중세 영국을 보면 덴마크에서 온 바이킹의 두개골을 차고 놀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뭐 어쨌든...두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돼지 방광 등으로 만든 공을 차서 상대편 마을까지 밀고 들어가 상대편 교회를 골대로 삼아 공을 넣는 게임이 있었는데 이것이 근대 축구의 아버지격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밀고 때리고 짓밟고하는 이런 폭력적인 게임이었고 규칙에 있어서도 정비가 안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게임은 유럽에도 있었지만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입니다.
(축구는 마을 패싸움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EPL의 라이벌전은 이웃 지역 팀간의 경기입니다. 맨유와 리버풀간의 레드 더비와 아스날,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가 유명하죠. 우리 야구 리그는 지역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삼성-해태의 라이벌전이 열기가 뜨거운데 영국식 지역감정을 예로 든다면 이웃 도시인 삼성-롯데전이 치열하다고나할까요? 또 축구는 노동 계급에서 인기있는 스포츠였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나이티드는 노동조합을 상징합니다. Arsenal[아스날]은 병기창이란 뜻으로 군수공장 노동자 팀에서 출발했죠.)
배드민턴은 원래 인도의 스포츠였죠. 테니스는 프랑스의 것이었고...하지만 근대 스포츠로 정비된 곳은 둘 다 영국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대로부터 세계 각지에 있었던 축구, 그리고 영국과 유럽의 마을 대항전의 하나였던 축구가 영국에서 정비되었고 때문에 영국이 축구 종주국으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을 패싸움에서 시작된 축구는 영국 기숙 학교의 스포츠로 진화하였고 캠브리지의 주도로 학교마다 다른 규칙이 통일되었고 그 이후 FA(축구 협회)가 발족하여 근대 축구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근대 축구 탄생과정에서 핸들링 규정을 완화한 것이 바로 럭비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죠) 다시 말해 축구는 세계 곳곳에 있었지만 근대 축구는 영국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공업혁명, 철도, 지하철 등 영국에서 탄생한 근대의 산물은 이루 말할 수 없죠.)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유럽 각국과 라틴아메리카에 축구가 널리 보급되어 인기있는 스포츠가 되었고요. 1904년 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프랑스, 에스빠냐 등이 FI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페데라시옹 앙떼르나시오날 드 풋볼 아소시아시옹] - football은 영어지만 FIFA는 프랑스어입니다.)를 창립하여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에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의 FA(축구협회)들이 모인 국제축구연맹위원회가 있었지만 이들은 FIFA에 가입하여 명실공히 FIFA가 대표적인 국제 기구가 됩니다.
19세기말 영국의 축구팀들은 프랑스 등 유럽 팀들을 상대로 보통 10골차 이상의 대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세계 각국에서 축구를 열심히 하면서 그런 격차는 점차 좁혀졌죠. 그리고 1930년 대망의 첫 World Cup(Coup du Monde; FIFA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영어입니다.)이 우루과이에서 개최되었고 개최국이 브라질을 꺽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훗날 조직력과 강한 체력을 앞세운 체코슬로바키아가 개인기를 앞세운 남미팀들을 박살내기 전까지는 세계 축구 무대는 화려한 발재간의 남미 선수들의 무대였습니다. 2차대전 이전의 옛 월드컵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선수들이 백만대군에 필마단기로 돌격하는 조자룡의 기개처럼 공을 몰고 돌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1986년 메히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혼자서 공을 몰고 잉글랜드 선수 모두를 제치는 묘기를 보여줬는데 아마 이런 모습을 다시 보긴 어렵겠죠. (선수들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 국내 내셔널리그에서는 가끔 볼 수 있다고합니다.)
초기의 근대축구에서는 골 넣는 것을 숭상하여 수비수 두세명을 제외한 전원이 공격수였는데 점차 균형을 갖춘 formation이 발달하여 오늘날과 같이 FW, MF, DF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갖춰졌습니다. 현대 축구하면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을 빼놓을 수 없는데 주제가 현대가 아니라 근대이니까 패쓰하고...
위 사진은 2차대전 이전의 '근대' 축구화입니다. 1998년 월드컵 때 back tackle이 금지되면서 공격수 보호에 획기적인 전환이 있었는데요. 2차대전 이전의 축구는 그 기원이 되는 영국의 마을 패싸움처럼 폭력적이고 거친 스포츠였습니다. 발을 걸고 밟고 차는 것은 기본이었죠. 때문에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농구화처럼 높이 올라와있고요. 발가락은 딱딱한 재질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발재간을 부리고 공을 다루는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발을 보호하기 위한 축구화죠.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규칙이 정비되며 선수들을 규칙으로 보호하게 되며 축구화는 점차 보호력보다 기능을 추구하게 됩니다. 클래식한 얇은 캥거루 가죽 축구화에서 고무판을 덧대어 공의 회전력을 강화시킨 아디다스 프레데터, 그리고 윙어들을 위한 가벼운 인조가죽 소재의 150g 정도되는 축구화까지 현대 축구에는 다양한 축구화를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패쓰하고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근대의 여러 산물들은 영국에서 탄생한 것들이 많고 축구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근대 축구가 대영제국(오늘날의 영연방) 국가들 밖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영국에 의해 세계화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인 무엇인가를 건드려주는 스포츠였기 때문입니다. 또, 기타 구기 종목들에 비해 규칙이 단순하여 본능의 억압이 적을 뿐더러 별다른 장비나 무대가 없이도 가능한 스포츠라는 것도 매력적이죠. 일제 치하의 조선 강원도 두메산골 어린이도 돼지 잡는 날이면 방광에 바람을 불어 축구하고 놀았고요 새끼줄을 공처럼 말아서 차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어린이들이 들판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공을 차며 놀면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것 역시 축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또 전세계에서 인기있는 스포츠라서 일자리도 전세계에 널려 있다는 게 이점이죠. 잘하면 유럽가고 좀 못하면 아시아 리그가고 이렇게...
이 글의 주제는 아니지만 현대 축구에 대해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브라질의 치과의사 축구 국가대표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축구는 고용주보다 피고용인이 더 큰 힘을 가진 유일한 분야이다." 이것은 축구가 전세계적인 스포츠라서 한 국가의 협회가 선수를 묶을 장벽을 세울 수 없고 고용주(구단)들끼리 경쟁이 돼서 가능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시스템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