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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계절의 시인

배우식 시인 (58호) - 절망의 어둠 속에서 찾은 빛의 이미지

작성자嘉南 임애월|작성시간21.07.14|조회수585 목록 댓글 1

■□ 이 계절의 시인 / 대담 임애월 편집주간

 

                                             절망의 어둠 속에서 찾은 빛의 이미지

 

                                                                           배 우 식 시인

 

- 앞산 녹음이 더욱 싱그러워지는 계절이다

58호 <이 계절의 시인>으로 배우식 시인님을 모셨다

한편의 영화 같은 삶의 스토리와 감각적인 이미지의 작품으로

시와 시조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시간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

 

임애월 : 배우식 시인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렇게 비대면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배우식 : 네, 저도 비대면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참 안타깝습니다.

임애월 : 웬만하면 찾아뵈려 했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아직도 수백 명을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많이 아쉽습니다.

내년엔 답답한 마스크도 벗고 숨통이 좀 트일까요.

배우식 : 우리 모두 마스크를 벗고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복귀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임애월 : 네, 그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인님께서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셨네요. 시골에 사셨나요? 어릴 적엔 어떤 소년이었는지 옛이야기 잠시 들려주세요.

배우식 : 네, 천안에서도 변두리인 시골에서 태어나고 살았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순한 빛의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임애월 : 그러셨군요. 사실 지금도 시인님의 분위기는 참 선해 보이십니다.(웃음)

청소년기는 또 어떻게 보내셨을까요.

배우식 :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 등 운동에 집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각종 백일장에서 장원을 독차지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천안소석문연회’라는 문학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천안문화원의 지원으로 3개월마다 천안문화원에서 시 낭송회 등을 개최하였으며, 동인 문집을 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박목월 시인님께서 시에 관한 강의 등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시인으로서의 꿈이 파릇파릇 움텄던 청소년기였습니다.

임애월 : 아하, 고등학생일 때부터 직접 문학동아리를 만들기도 하셨군요.

대형건설사 토목기사로 굵직한 건설현장에서 활약하셨다고 들었어요.

배우식 : 네, 젊어서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 해외 건설현장 등에서 일을 했지요.

임애월 : 2003년에 《시문학》으로 등단하셨으니 비교적 많이 늦게(?) 문학의 길로 들어서신 편이죠? 어떤 계기가 있으셨다고요?

배우식 : 해외 근무 및 출장 등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지요. 안과병원에서는 원인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그 원인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접고 문학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래서 등단도 하게 된 것입니다.

임애월 : 시인님께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삶을 사셨는데,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건 한쪽 눈이 실명된 이후라고 신문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맞나요?

배우식 : 맞습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왼쪽 눈은 완전히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눈은 아주 가까이에서 보아야 글자가 간신히 보일정도로 눈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주저앉으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떤 시련이 있으면 오히려 더 도전 의식을 갖고 맞서서 극복하려는 성격인지라 그 눈을 가지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도 판서한 글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요. 다만 교수님의 목소리를 노트에 감각적으로 받아 적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노트에 쓴 글자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요. 집에 가서 배율이 높은 돋보기를 대고 한 자 한 자 오랫동안 눈으로 품었습니다. 울음을 걸어 잠근 눈에서 시의 새싹이 조금씩 움 돋고 있었습니다.

임애월 :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으로 오르는 계단을 스스로 만드신 셈이군요.

강의시간에 쓰러지셨다는 소문도 사실인가요?

배우식 : 네, 사실입니다. 저의 발제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어지러웠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요. 내 머리카락이 부서질 만큼 아팠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지요. 그럼에도 울지는 않았습니다. 울지는......

임애월 : “울음을 걸어 잠”그어 두셨으니......

아픈 시인님을 대신하여 사모님이 대학원 강의시간에 대신 발표를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참으로 대단한 두 분이시구나... 생각했어요.

문학에 대한 그 열정과 두 분의 사랑이 결국 오늘의 시인님을 탄생시켰네요.

배우식 : 아내의 노력이 컸습니다. 바닥으로 쓰러질 때마다 일으켜주었습니다.

임애월 : 두 분의 사랑이 참 아름답습니다.

핑계 김에 사모님 자랑도 좀 해주세요.(웃음)

배우식 : 비가 오면 가만히 노란 우산을 펴들어주었지요.

임애월 : 아, 답변은 아주 짧지만 “노란 우산”이 주는 이미지는 깊고도 선명합니다.

생존확률이 15%밖에 안 되는, 생과 사를 오가는 뇌종양 수술을 받으셨다고요?

배우식 : 맞습니다. 생존확률도 생존확률이지만 혹시 생존한다 하더라도 온전한 생존이 아니었습니다. 눈과 귀 등 모든 감각기관들이 그 역할을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씀 때문이었지요. 그럼에도 10시간이 넘는 수술은 진행됐고, 마침내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떠보라”는 의사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습니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환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울음을 터트렸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에 박힌 어둠의 못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위해서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코로 수술을 해주신 이승훈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고 단순한 물혹이었다고 합니다. 두 눈의 시력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어느새 나는 꿈에서도 삐거덕거리던 어둠의 문을 열고 환한 세상으로 발을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임애월 : 암이 아니었다니 정말로 천만다행입니다.

그리고 뇌수술을 코를 통해서 했다니... 의학기술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 긴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 처음 하셨다는 “새를 주세요”라는 말이 어디서 날아와 제 귀에 바로 꽂히는데요. 시인님께서는 무의식 속에서 새가 가지는 무한 자유로움을 간절하게 갈구하고 계셨나 봅니다.

배우식 :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몸은 물론 마음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쌓이다보니까 무의식 속에 자유를 무척이나 갈망했던 것 같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저도 모르게 한 첫 말이 “새를 주세요”였습니다. 창공을 나는 새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걷고 뛰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 속에 가득 쌓여 있었나 봅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던 멍든 몸의 간절한 소망 같은 거였습니다. 그 당시의 내 삶의 단 한 권의 책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날마다 속수무책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것이 “새를 주세요”라는 말로 터져 나온 것 같습니다.

임애월 : 그 한 마디가 어둠 속에서 건져낸 최고의 詩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의 발문에서 이승하 시인은 배우식 시인의 시정신은 “고통을 넘어 환희로 나아갔던 베토벤의 정신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시며 “고통의 뜻을 아는 자의 육성”이라고 하셨지요.

이 작품집에서 유독 “어둠” “캄캄” “상처” 등과 “햇빛” “환한” “등불” 등과 같은 어둠과 밝음의 시어들이 서로 대비를 이루면서 시각적인 이미지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식 : 저의 첫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는 한 권의 ‘병상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력을 잃어가며 어둠으로 빠져드는 삶 앞에서 간절한 기원은 ‘환함’이었습니다. ‘환함’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나의 시는 자연스럽게 어둠과 환함의 시각적인 이미지가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저의 문학적 스승님이신 이승하 교수님께서는 저의 시정신을 시집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배우식의 시정신은 고통을 넘어 환희로 나아갔던 베토벤의 정신과 크게 다를 바 없다”라고요.

 

울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어두운 몸을 본다

 

나는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햇빛 받으며 피어나는 나팔꽃

햇빛 가득한 그 꽃잎

한 조각이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바람 속의 별빛

혹은 달빛이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아니, 그도 저도 안 되면

햇빛 벌레가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울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어두운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내 몸을 구부려 따뜻하게 감싸면서

천년을 더 그렇게,

                       -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전문

 

임애월 :. “어두운 몸”을 지녀본 사람(?)은 빛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낄 것 같습니다. 어둠의 무게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밝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게 다를 테니까요.

“햇빛 벌레가 되어서라도” 그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육성으로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배우식 : 어두움이 몸속으로 스며들면 환한 빛을 찾아가는 마음을 어둡게 덮칩니다. 우울해지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저의 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사람들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은 겁니다. 환한 빛을 향한 발걸음은 또한 삶의 깨달음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임애월 : 이 시집은 첫 시집이었는데 문예진흥기금을 받으셨네요.

배우식 : 수술 전 고통의 시간들과 한 차례의 광풍 같은 수술 시간들의 파편화된 기억들을 모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적 상황을 바탕으로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공감과 감동의 시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생각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쓴 시들을 통해 2004년 ‘문예진흥기금 문학창작지원 대상자’로 선정됐고, 이로 인해 첫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이 발간되자마자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언론, 방송 등이 이 시집을 크게 주목하였습니다. 그 동안의 옹이진 고통이 빠져나가고 가슴 한 복판 뻥 뚫린 구멍에서 수천 마리의 새가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시가 나를 살렸다는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오로지 시와 시조만을 껴안고 삽니다.

임애월 : 시는 감동이니까요. 기교가 뛰어난 시도 좋지만 감동을 주는 시에 독자들은 더 주목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실린 시 「북어」는 중 ·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지요?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이 작품을 분석하는 문제를 시인님께서 풀지 못하셨다고요?(웃음)

배우식 : 그렇더라고요. 제가 시력을 잃고 또한 잃어가고 있을 때 문득 집에 걸린 북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뜨고 있는 제 모습과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계속 벌리고 있는 저의 모습이 너무도 흡사했습니다. 그런 상황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기 위해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하면서 용기 아닌 용기를 북돋아주는 모습이 참으로 눈물겨웠지요.

임애월 : 하긴 오래 전에 어느 시인의 작품이 대입수능 문제로 출제되었는데 정작 그 시를 쓴 시인도 문제를 못 맞혔다는 후문이 들리더라고요. 시의 해석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인가 봅니다.

배우식 : 맞습니다. 시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쓴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발표된 시는 오롯이 독자의 것입니다. 시는 다의성이 중요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야 오히려 좋은 시입니다. 교과서 시 「북어」는 북어를 의인화하여 쓴 산문시입니다. 한 문장의 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만들었고 반어법을 사용하여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북어」의 주제를 ‘실속 없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권세를 부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라고 가르치고 있더군요. 이 또한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의 해석은 정말 독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 부라리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 「북어」 전문

 

임애월 : 남상학 시인은 “진실과 거짓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를 비판”하는 시라고 하셨던데, 일반적인 독자들은 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합니다.

배우식 : 남상학 시인과는 또 다르게 “부질없는 위협으로 허세를 부리는 북어의 목소리를 통해, 그와 유사한 세태를 풍자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들린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시는 한송이 선생님은 “사람들이 벌벌 떨며 도망가길 바라면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북어, 허세를 부리는 북어의 모습은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애처럽기도 하다”고 해석하고 있는 등 다양합니다. 정말 시의 해석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입니다.(웃음)

임애월 : 이 작품은 세 개의 문장으로 되어있는데 특이한 점은 문장이 끝나는 곳에는 종점이 없는데 문장의 중간에는 쉼표가 있어요. 어떤 의도가 숨어있나요?

배우식 : “시는 춤이고 산문은 도보다”라는 폴 발레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는 산문과는 다릅니다. 현대시는 현실의 사물을 변형시키고, 언어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문법틀을 파괴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불가해성을 지향합니다. 프랑스 시인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은 ‘엘사의 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시는 언어 조직, 문법 규칙 및 화법의 파괴를 통한 언어의 지속적인 재창조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시는 문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것입니다.

임애월 : 아하, 일종의 충격요법(?)이군요. 그래서 그런지, 읽으면서 긴장감이 좀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시가 나를 살렸기 때문에 시를 통해 어두운 곳에 환하게 등불을 켜고 싶다”고 하신 말씀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시를 쓰시고 가르치시나 봅니다.

배우식 : 그렇습니다. 수술 후에 건강 상태가 좋아졌고, 고통스러워도 가야하고 고통스럽지 않아도 가야할 길이기에 지금까지 하루에 4시간 이하로 잠을 줄여가며 나름대로는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며 시와 시조를 쓰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였지만 갈수록 시는 시로만 서 있을 뿐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의 외곽만을 떠돌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문득 두려워지는 요즘입니다.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시 창작법’을 가르치고는 있습니다만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지성여신(至誠如神)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임애월 : 지금처럼 겸손한 그 마음이 사실 시인님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2009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인삼반가사유상」으로 당선되셨지요? 2003년에 《시문학》으로 이미 등단하셨고 시집도 묶으셨는데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된 이유가 있으셨나요?

배우식 : 첫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를 낸 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저는 반대로 몸이 오그라드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웅크린 마음으로 우연히 시조를 접하게 되었는데 몸이 활짝 펼쳐지는 거였습니다. 몸은 텅 빈 것 같은 걸 느낄 때 무언가에 간절합니다. 나무가 나무속에서 꽃이 나오기까지 꽃의 골몰한 생각인 것처럼 제가 저의 몸에서 시조가 나오기까지 시조에 집중하고 골몰했습니다. 그때 강화도에 잠시 가 있을 때였는데 주위에 인삼밭이 많았답니다.

임애월 : 아, 휴양 차 강화도에서 사신 적이 있으셨다고요?

배우식 : 그렇습니다. 강화도 길을 이리저리 다니며 인삼을 많이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한 편의 시조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가만히 가슴에 품고 작품을 썼습니다. 며칠을 끙끙대며 시조를 썼습니다. 마침내 시조 「인삼반가사유상」이 탄생했습니다. 그때 많이 설렜습니다. 아이처럼 시조 작품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이후 몇 편을 더 써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하였고, 「인삼반가사유상」이 당선되었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한 이유는 특별히 없었습니다. 모두가 우연이었습니다. 인생 자체가 우연이 아닐까요?

임애월 : 물론입니다. 삶이 계획한 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좋은 시는 애써서 힘들게 쓰고 만드는 게 아니라 저절로 온다고 하던가요. 시인님께 가만히 다가온 「인삼반가사유상」에서는 무슨 냄새가 났을까요?(웃음)

배우식 : 시인은 소리와 빛에서 냄새를 맡는 사람입니다. “인삼 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와 “인삼반가사유상의 얼굴”에서 퍼져 나오는 “환하게 맑은” ‘빛’을 손으로 만지는 사이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자라납니다. 그 ‘향기’는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고 둥글어집니다. 어둠을 밀어내고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저는 가만히 저의 맨발을 그 보름달 속에 넣습니다. 발가락부터 환해져 온몸이 환해지는 걸 느낍니다.

임애월 : 아하, 그 둥글게 자라난 향기가 시인님의 온몸을 환하게 비춰주었군요.

시인님께서는 시조의 가장 큰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배우식 : 제가 2012년 창간한 《정형시학》 ‘창간호’ 권두언 첫 머리에 저는 “시조는 땅과 하늘을 닮았다. 막힌 듯하면서도 막힌 데가 없이 트여 있고, 닫힌 듯하면서도 닫힌 데가 없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땅과 하늘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을 시조는 3장 6구의 정형 안에 자유롭게 담는다. 그야말로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이것이 시조의 매력이 아닐까요.

임애월 : “유한하면서도 무한하다” 막힌 듯... 열린 듯... 그렇지요.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1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

인삼 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

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

 

2

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 올려 보낸 뒤

땅속에서 환하게 반가부좌 가만 튼다.

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

무아경, 온몸에 흙물 쏟아져도 잔잔하다.

깊고 깊은 선정삼매 고요히 빠져있는

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의 얼굴이 환하게 맑다.

 

3

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

그 사내 침묵의 사유가 만발하여 나도 환하다.

                                  - 「인삼반가사유상」 전문

 

임애월 : 가끔씩 인삼을 볼 때면 깜짝 놀라 정말 그 이름이 왜 붙었는지를 다시 상기하게 되는데요, 시인님께서는 인삼에서 땅속 침묵의 가부좌를 튼 반가사유상을 보셨군요.

배우식 : 인삼의 형상에서 반가사유상의 모습이 겹쳐보였습니다. 이것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작품을 쓰게 되었고, 두 사물의 이름을 합성하여 하나로 고유명사화하여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바로 ‘인삼반가사유상’입니다. 이는 시의 제목이면서 “깊고, 깊은 선정삼매에 고요히 빠져 있는” 사내로서 깨달음의 경지에서만 볼 수 있는 환하게 맑은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절정에서 고통을 해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애월 : 이 시조에서 1연의 “투명창이 보인다”와 2연의 “환하게 맑다”, 3연의 “나도 환하다” 등 종장의 이미지가 모두 맑고 환하거든요. “온몸에 흙물 쏟아져도” “선정삼매”를 지나온 “그 사내”는, 어둠 속의 고난을 묵묵히 견디시고 이겨내 마침내 환해지신 시인님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배우식 : 시조에서도 저의 시적 지향점은 ‘환함’입니다. 단순한 ‘환함’이 아니라 깨달음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근배 심사위원님은 심사평에서 “당선작 「인삼반가사유상」은 오래 흙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인삼뿌리에 생각을 입혀 소리와 빛깔을 알맞게 구워내고 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임애월 : 얼마 전에 시조집 『이렇게 환한 날에』를 출간하셨군요.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도 받으시고... 축하드립니다.

배우식 :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지원금을 받아 올해에 시조집 『이렇게 환한 날에』를 출간하였습니다. 시조집으로는 『인삼반가사유상』, 『연꽃우체통』에 이어 세 번째 시조집입니다. 이번에 발간한 『이렇게 환한 날에』는 ‘제6회 조운문학상 수상 기념’ 시조집이기도 하여 저에겐 더욱 의미 있는 시조집이기도 합니다.

임애월 : 세 번째 시조집이군요.

대한민국예술원장 이근배 시인은 이 시집 촌평에서 “시조와 자유시의 경계 허물기로 바깥세계로 발돋움하는 한국시의 지평을 넓히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고 극찬하셨어요.

배우식 : 이근배 시인님은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님이시기도 하시지만, 저를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시켜 시조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고마우신 분입니다. 시조집 『이렇게 환한 날에』 표사에서 이근배 시인님께서는 “배우식 시인은 내 나라의 오랜 모국어 가락에 매달려 날로 더욱 장엄하게 뻗어가는 현대시조의 산맥에 높은 키의 소나무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당신 몸 비밀번호.

 

산새가

콕콕 누르자

 

철커덕, 네가 열린다.

 

안에는

달빛만 한 접시,

 

보는 눈 가만

환해진다.

                    - 「달빛 한 접시」 전문

 

임애월 : “달빛” 때문인지, “비밀번호” 때문인지, 이 작품을 읽으면 참 신비로운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이지엽 시인은 여기서 “당신 몸”은 대자연 자체이고 “산새‘는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에너지라고 해설하셨어요. 역시 마무리 종장은 시집의 제목처럼 환해지고 있고요.

배우식 : 이 시조에서 ‘산새’는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서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에서 ‘당신’ 과 ‘너’는 ‘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를 크게 확장하면 대자연 자체로까지 그 의미가 닿습니다. 내부에는 오직 ‘달빛’만이 존재합니다. 이는 저의 시세계의 중심 키워드는 ‘달빛’으로 표상되는 환한 세계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어둠의 세계에 달빛을 뿌리고 걸어가는 시인을 상상합니다.

임애월 : 바로 시인님 자신이시군요.

저는 「이 바다가 바다인가?」를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온몸에 검은 기름/뒤집어 쓴 저 바닷새”의 안위가 곧 우리들의 안위이고, 이 지구의 환경오염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들, 아니 우리 후손들의 미래와도 연결이 되니까요. “남몰래 합성수지/내던지는 새까만 손”들은 바로 나와 내 이웃인거죠. 무심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들과 플라스틱 제품들... 우리가 매일 먹는 천일염 속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있다고 하니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거든요.

배우식 : 환경오염은 자연 생태를 파괴하고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며, 자연 자원의 고갈, 악화를 더욱 촉진하여 인간의 생활환경을 위협하게 됩니다. 이런 환경오염 문제는 지구가 주는 소중한 자원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 바다가 바다인가?」는 쓰였습니다.

임애월 : 작금의 환경오염은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지요. 환경오염 문제는 난제이긴 하지만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라 꼭 해결해야만 하잖아요. 이를 위해 시인들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배우식 : 환경오염 문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큰 것이 아닌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해도 늦지 않습니다. 텀블러 사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의 자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생활 속의 분리수거 등 환경보호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이런 실천적 행동과 함께 우리 시인들은 특별히 환경오염의 위기와 심각성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널리 알려야 합니다.

임애월 : 네, 그렇습니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 지구의 구성원으로서의 직무 위반이기도 합니다. 환경이 싱싱하게 살아야 있어야 우리도 살고 우리의 후손들도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지요.

이 시집 속에는 “아버지”가 여러 번 등장하네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신가요?

배우식 : 저의 아버지는 어머니만큼이나 다정다감하셨습니다. 이제는 다시 못 오실 먼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지우려고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그 자리에는 새가 날고 나무가 들어서고 달과 별이 뜹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미치게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은 또 왜 그렇게도 나는지요.

임애월 :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자꾸만 새록새록 돋아나시나 봅니다.

현재 중앙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신데, 詩가 살려내 준 시인님의 시간에 시를 가르치고 계시니 보람이 남다르시겠어요?

배우식 : 시를 생명처럼 생각하는 저에게 시를 가르친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입니다. 시 속에 가만가만 두레박을 넣어 시 창작법을 퍼 올려 그 오묘한 시 창작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는 제게 있어서 환희입니다.

임애월 : 수주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많이 받으셨군요.

배우식 : 부끄럽습니다. 수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시를 쓰고 가르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고마움입니다. 부족한 저에게 중앙대문학상, 조운문학상 등을 주신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임애월 : 겸손하신 말씀이시군요.

시인님 마음속으로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세요. 독자들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웃음)

배우식 :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환경오염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환경오염 문제는 환경오염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폐해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 바다가 바다인가?」는 이런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에 관하여 절실하게 쓴 작품입니다.

 

원유를 쏟아 붓는

악마 같은 탱커 선장.

 

온몸에 검은 기름

뒤집어쓴 저 바닷새.

 

노도는

흰 거품 물고,

 

쏴아, 쏴아 절규한다.

 

남몰래 합성수지

내던지는 새까만 손.

 

콧속에 플라스틱

빨대 박힌 바다거북.

 

천둥은

아우성치고,

 

물고기 떼 울먹인다.

              - 「이 바다가 바다인가?」 전문

 

임애월 :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스스로 부끄러워지네요. 일회용품은 거의 안 쓰고 합성세제나 비닐봉지, 자동차 주행거리 등도 그 양이나 거리를 최소화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은 합니다만, 인간이 이 지구의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닌 듯하여 반성합니다. 지구의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우리 모두 더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앞으로 시인님의 시 쓰기와 시조 쓰기의 방향성이 궁금해집니다. 인생의 모든 게 우연이라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배우식 : 폴 발레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경멸한다”에서 앞으로 저의 시와 시조 창작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익숙한 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 낯설고 새로운 것의 방향성입니다. 그동안 저의 시 창작법 등 모든 영역을 부정하고, 저 자신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방향성의 영역으로 뛰어 넘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다 ‘바깥’을 사유하는 ‘바깥’의 시 창작과 시조 창작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임애월 :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안에서 밖으로... 그 방향성은 무한하게 열려 있어서 어디를 향하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군요. 러시아 형식주의자 슈클로프스키의 말처럼 “낯설게 하기”가 문학창작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라면, 독자들의 낯설게 인식하기도 적극적으로 따라가 줘야할 것 같습니다.

  여러 모로 바쁘실 텐데 어쭙잖은 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 한번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배우식 : 네, 고맙습니다.

 

- 캄캄한 절망의 나락에서 스스로 빛의 계단을 만들고

서두르지 않고 묵묵하게 그 계단을 오르시는 배우식 시인님

그가 꿈꾸는 맑고 환한 세상,

아름다운 지구별의 미래를 함께 열망한다 -

 

 

■□ 자선시 5편과 약력

 

 

하얀 새

 

은목서꽃 같은

하얀,

 

새 한 마리가

하얀 은목서꽃에

 

사뿐,

내려앉는다.

 

뒤따라온

바람이

개울물 소리를 밟고

어디론가 사라지자

 

하얀,

 

옷을 입은

어머니가 앉아 있다.

 

황급히

그리움의 벽을

기어오르는 손가락이

붉어진다.

 

 

 

감나무는 감나무의 이름으로 서 있다

 

감들이 한꺼번에 걸어온다

지하 계단을 걸어

올라와 현관 앞 정원에 우뚝 선다.

 

손가락이라고 쓴

허공을 불어 감나무 위에서 터트린다

와르르 손가락을 뒤집어쓴 감들은

하늘 위로 떨어진다 빠르게

떨어지다가 돌연,

정지한 채 공중에 떠 있다

 

감들은 어째서 중력의 법칙을

배반하고 저렇게 떠있는가

얼굴도 없는 중력이 경악한다

 

남겨진 내 손가락들이

감나무 안에서 서성일 때마다

감나무의 출입문이 닫혔다 열린다

 

문득,

열 개의 손가락이 나를 끌고

처음의 거실로 돌아온다

감나무는 붙어 있는 가지와

다시 붙으려는 감들의 고요한

아우성이 뒤섞인다

 

바깥에서, 감나무의 바깥에서

감나무를 다시 바라본다

 

우거진 가을 한가운데

감나무가 감나무의 이름으로 서 있다

별로 눈부실 것도 없는데 눈부셔서,

 

나는 소스라친다

 

거실에서 홈 시시 티브이

모니터로 죽은 까마귀 날아오르는

소리를 본다

 

 

 

연꽃우체통

 

바깥소식 궁금해진 버들붕어 송사리가

연못 속 꽃봉오리 하나 둘씩 밀어 올린다.

 

어느새 세상에 앉아

제 몸 여는 빨간 연꽃.

 

일제히 물고기의 말들이 날아오른다.

사람의 마을 향해 환하게 열려 있는

 

저 꽃은 빨간 우체통,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편지를 배달하는 체관 물관 분주하고,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

 

오늘도 연꽃우체통에

편지 한 통 넣는다.

 

 

 

 

나비파랑

 

장애인 노부부가

국밥 서로 떠먹인다.

 

뒤틀리고 흔들리며

오고 간 손길 끝에

 

고요히 매달려 있는 파랑,

나비 되어 훨훨 난다.

 

 

 

이렇게 환한 날에

 

검은 밤 하얀 조각배 마당 위에 정박해 있다.

얇은 숨 멈춰서야 빈 몸으로 오른 여자.

 

후드득,

저 어머니가

꽃으로 피어 앉아 있다.

 

살아서는 집밖 천지 모두 다 파도라며,

스스로 배가 되어 살아온 내 어머니.

 

뭇별이

와와 뛰어내려

배를 밀며 올라간다.

 

별들의 발자국 소리 풀밭 위에 소복하고,

거기 살짝 닿기만 해도 팡팡 터져 별빛 환하다.

 

이런 날

눈물 글썽한 눈,

홀로 빈 방에 남아 있다.

 

하얀 빛 찔레꽃빛 울 엄마 반달 쪽배.

낮에 나와 하늘 바다 아프게도 흘러간다.

 

이 슬픔,

활로 휘어져

내게 화살 쏘아댄다.

 

 

■□ 배우식 시인 약력

 

2003년 《시문학》 신인상,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3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에서 문학석사, 2018년 문학박사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우수문학도서 선정/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대시조100인선 <연꽃우체통>, 문학평론집 <한국 대표시집 50권>(공저) 등

시 「북어」가 2011년부터 고등학교, 2019년부터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

2004년 문예진흥기금 문학창작지원, 2013년 서울문화재단,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 대상자로 선정

제7회 수주문학상, 제1회 중앙대문학상 청룡상, 제6회 조운문학상 등을 수상

(사)열린시조학회 회장, 계간 《정형시학》을 창간, 현 주간. 문학아카데미시인회 회장

중앙대학교에서 ‘시와 시조 창작법’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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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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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의숙 | 작성시간 21.07.16 상임이사님
    수고 많으셨어요
    배우식 시인님
    건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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