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주머니(노숙자 3)
고정현
그 남자의 옷에도 주머니가 있었지,
바지는 다 찢어져 속살이 보이고 있지만 옷 색깔이 바뀌어버린 윗도리에 두 개의 주머니가 있었지,
머리는 파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겨우내 한 번 감지 않아 스프레이 뿌린 것처럼
아주 특별한 헤어스타일이 되었고 눈빛은 늘 처량하게 보였어.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내는 것을 보았지.
빈 종이컵. 구겨진 천 원 지폐. 동전 몇 개. 담배꽁초 몇 개. 그리고 라이터가 얼굴을 내밀었어.
그 남자는 손으로 자신의 재산을 헤쳐 보고는 무엇이 즐거운지 씩 웃음을 흘리더군.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듣기엔 서울의 이름난 대학 법과 생이었다는데,
어쩌다 정신을 놓아버리고 지하철 계단에서 자신의 수입을 만들곤 했다지.
그 재산 목록을 지금 확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인도 위에 널려 있는 그의 재산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 번씩 쳐다보곤 지나갔지.
그 남자가 주머니의 모든 것을 꺼내어 놓은 인도는 그 남자가 다녔다던 대학교 정문 앞이었어.
그 남자의 후배들이 떠들고 웃으며 지나다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교 정문 앞 인도.
*제 1시집 "붉은 구름이고 싶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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