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시, 시조, 동시

청리역에서 / 임애월

작성자嘉南 임애월|작성시간21.04.12|조회수84 목록 댓글 3

청리역에서

 

임 애 월

 

 

청리역에서는 하루 서너 번

기적을 울리며 완행열차가 들어와

잠시 머물고는 금방 떠난다

산골짜기 사이로 꼬리를 감추는

열차의 꽁무니에 매달려 아득해지는 계절

여름비 내리던 날

작은 배낭을 맨 그대가 빗속에서 멋쩍게 웃을 때

먼 산맥들이 천지사방에서 따라와 마중하였다 

말 없이 엎드린 채 100년을 지켜온 간이역의 긴 레일

오래된 필름 속 낡은 영상 같은 한 폭의 수채화

그 여름날의 풍경 속으로 기차는 무심하게 떠났고

몇 개의 추억과 함께 나는 남겨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형체도 모르는 시간처럼

소리도 없이 곁을 떠나버린 것들과

살다가 문득 그리워지는 이름들이

평행선을 달려와 철로변에서 서성이고

목이 긴 철새들이 다시 날아들기 시작한다

직선을 고집하는 딱따구리 소리 가을숲을 흔들면

점점 가벼워지는 산맥의 능선

이 가을

떠나는 것들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 청리역 -경북 상주시 청리면에 있는 간이역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차리염 | 작성시간 21.04.13
    감상했습니다
    댓글 이모티콘
  • 작성자고정현 | 작성시간 21.04.18 매표소도, 개찰원도 없는 역,
    기차를 타고 객차승무원에게 표를 끊었던 추억은
    청리역에만 남아있는 추억은 아니었지요.
    전국 곳곳에 그런 추억을 담은 간이역이 있었으니까요.
  • 작성자들꽃 향기 | 작성시간 21.04.24 아침에 힗링하고 갑니다.떠나고 싶은 이 봄에...감사히 읽었습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