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리에서 8 -빨래-
고정현
어머니의 손에 잡힌 빨랫방망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임진강을 자르듯 아래로 내리치니
강보다 먼저
빨래판이 되어준 넓적한 돌이 놀란다
어머니는 한숨이 가득 묻은 방망이로
아버지의 가슴을 내리치고
아들의 등을 토닥거리며
딸의 종아리를 어루만지더니
강에게 쓰다듬으라 건네준다
푸른 강물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주저앉은 삶의 속임을 어쩌지 못하는
속상함과 분노와 실망과 걱정을 씻어주고
안개로 뒤덮인 막연한 미래의 염려를
하나씩 가슴에 품고 흘러간다
어머니의 작은 손에 잡혀 흔들리던
자식들의 옷이 물속에서 올라오는데
거기, 하얀 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제 3시집 "바다에 그늘은 없다"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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