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리에서 12 -장마-
고정현
멀뚱거리는 눈으로
비에 지워지는
땅따먹기 흔적을 보며
들에 가신 엄마에게
우산 갖다 드려야 할 것을 잊었고
거친 걸음으로 오신 엄마는
부엌 들어서기 전
말 폭탄을 쏟아 내셨지만
피할 곳은 처마 밑뿐이었다
연기는
무거운 비를 맞으며 하늘로 오르고
수제비 냄새는 처마 밑까지 쫓아왔지만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빗줄기 바라보는 아들의 처량함을
아버지는 막걸리 사 오라는 호통으로
벗어나게 하셨다
긴 장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 3시집 “바다에 그늘은 없다”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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