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21(빈 소주병)
고정현
어느 여류 시인이
빈 소주병에 대한 시를 낭송하는데
나는
텅 빈 소주병이
바람 스쳐가는 길목에 누워
무슨 소리 냈는가 기억 해보니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새의 짝 찾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느 날 밤
여인이 흥분에 겨워
자지러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취한 사내의 웅걸 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느 저녁
집 앞 공원 정자에 앉아
빈 소주병 하나 앞에 놓고
바람 스쳐갈 때
무슨 소리를 내는지 관심을 주었더니
아!
병실에 누워
마지막 숨 고르느라 애쓰시는
어머니의 끈적이는 바람소리가
휘이 휘이이이이 휘 이이이이이 하며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덩그러니 누워 있는 빈 소주병
잠시 후
어느 노인이 눈치를 보며 주워갔다
*울진 덕구 온천에서 땀을 쏟아내고
야외에서 마시는 한 잔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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