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22(시인들의 酒店)
고정현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가
지루한 하품 하며 졸고 있고
카운터에 엎드려 여우 잠에 빠진
주인의 옅은 숨소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질서를 잊어버린 수저들과
널브러진 어지러움은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마냥 편하게 쉬고 있다.
넓은 공간 차지하고 둘러앉은 이들은
약지로
술잔 휘휘 저어 단 숨에 들이 키고
몇 점 남지 않은 두부김치 위에
시 몇 편 덧칠하듯 얹어놓은 후
게슴츠레한 눈으로 입맛 다시고
그 솜씨와 정성 한 점 젓가락질 한다.
트림에 덜미 잡혀 입 밖으로 나오는
유명한 시인의 시 한 편이
그들의 난잡한 목청에 휘말리고
홀 안 가득 채운 시어들의 아우성은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지고 있는데
조간신문이 문틈으로 드려지고 있다.
*속초 두부마을에서
술의 유혹을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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