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목서꽃
임 애 월
'은목서꽃이 피었어요'
남도에서 전파를 타고 온 소리의 입자들이
그녀의 목소리로 온전하게 형상화되었을 때
한번도 내 후각의 영역 안에 들어온 적 없던
은목서 꽃향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꽃나무 가지에는 은목서꽃 닮은
곤줄박이 몇 마리 날아와
쓸쓸한 그녀의 가을 뜰 안을
고운 노래로 가득 채워놓았으리라
코로나를 핑계로 순식간에 지나쳐버린
몇 번의 가을을 지나
11월 산맥의 능선은 점점 느슨해지는데
이 가을이 마저 가버리기 전에
고즈넉한 그녀의 황혼녘을 함께 거닐고 싶다
황톳길 구불구불 남녘의 강줄기 따라
따스한 군불연기 피어오르는 그녀의 낮은 뜨락에
내 간절한 그리움도 부려놓고 싶다
멀리멀리 제 안부를 날리는 은목서 꽃향에
지친 순례자의 감미로운 휴식처럼
자전과 공전의 궤도
잠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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