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임 애 월
어둠을 뚫고 예감처럼 겨울비 내린다
건조하고 삭막한 간절기를 틈타
파란 양철지붕
조심조심 두드리는 빗소리
치열하게 한 생을 걸었던
한때는 화려했던 세상의 누더기들
말갛게 씻겨 내린다
잠들지 못하는 이승의 밤을 껴안고
묵묵히 비를 맞는 마당 끝의 늙은 감나무
그 헐거운 어깨가 남루해 보이지 않는 건
오롯이 품고 있는 나이테 때문이다
앙상한 가슴으로도 부끄럽지 않은
가지 끝 기억들을 붙들고
긴 산맥을 달려온 비의 발소리
산사의 새벽독경처럼 경건하게 듣는다
바람처럼 가벼운 시간의 숲 속으로
새로운 계절의 긴 호흡을 따라가며
무성하게 다시 피어날 잎사귀들의
향긋한 행방을 꿈꾸는 겨울비
또 다른 생의 화려한 예감을 위하여
오늘은 밤새도록
가난한 추녀 끝을 어루만지고 있다
- <월간문학> 202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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