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18
[가장 기억나는 여행 4]
구례에서 일 박을 한 후, 나는 서둘러 화개로 갔다. 그 유명한 조영남씨의 화개장터라는 노래도 그렇지만 당시
화개 파출소의 소장이름도 조영남씨라고 소문난 곳,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곳이기도 했지만,
오늘 중으로 화개 장터와 토지의 평사리를 들러 하동까지 가야하는 일정 때문이었다.
화개장터, 말 그대로 시골의 장터일 뿐이었지만 노래가 주는 의미 때문인지 새롭게 느껴지는 장터였다.
하지만 나는 장터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장터 주변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아침이라고 해도 내 식사 시간은 다른 이들의 새참 시간정도 일 것이다.)
눈의 뜨이는 식당으로 갔다. 시골 식당들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듯, 역시 세월의 이끼가 묻어있는 건물의
식당이었다.
육십 대가 넘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 혼자 하는 식당, 해장국을 주문하면서 소주 한 병을 부탁하니 나를
보면서 묻는다. 아마 그 시간에 혼자 여행 가방을 내려놓고 주문하는 손님이 조금은 달리 보였는지
“혼자세요?”한다. “예, 혼자 여행하는 중입니다.”하고 답을 하니 “혼자 여행하세요? 뭐하시는 분이신데?”
하고 묻는다. “아!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주인이 다시 말한다. “시인이신가 보네요, 그럼 소주 말고
막걸리 드셔보실래요?” 하고 다시 물으면서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페트병에 가득 찬 막걸리를
식탁위에 얹어 놓으면서 “어제가 제사였는데, 제사에 쓰려고 직접 담근 술인데, 남았어요. 남편이 시를
좋아하는데,”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마시는 중에 남편 되는 분이 들어온다. 택시 운전을 하시는 분인데 잠시 쉴 겸 들어
오셨다고 하더니 부인이 내가 시인이라고 하니 선 듯 일어나 안에서 백지 한 장을 들고 나와 사인을 해 달란다.
무안하게 되었다. 이름도 없는 뜨내기 시인인 내게 사인을 부탁하신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제야 나는 식당 벽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사인지를 보았다.
“처음이세요?” “예, 처음입니다.” “그럼 쌍계사도 안 가보셨겠네요?” “예.” 그런 후 내가 식사를 마치기까지
남편은 앉아 있다가 내가 계산을 하려 일어서자, “안 바쁘시지요?”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말하니 자신의 차에
타라고 권한다. 쌍계사까지 태워 주겠다고......
여주인은 내가 마시다 남긴 페트병 막걸리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가방에 넣어 주면서, 목마를 때 마시라고
하는데, 묘한 감동이다.
쌍계사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 길가에 나물을 파는 노점들이 모여 있는데, 한 노점의 여주인이 말을 건다.
나물 맛 좀 보고 가라고 무친 나물 한 점을 젓가락에 집어 준다. 한 점 받아 먹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가방속의
막걸리.
무친 나물을 조금만 파시라 했더니 팔지는 않는데 그냥 조금 담아 주겠다며 담아 준다. 고마워서 사게 된
나물 한 봉지.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데 녹차 밭들이 줄지어 있었고, 몇 여자 분이 자연산 녹차를 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나는 갓길에 주저앉아 막걸리와 나물을 꺼내 상차림을 한다. 그리고 그 여자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잔......
그러고 나서 평사리를 돌아 하동 송림 공원, 아! 노을이 지는 저녁나절, 섬진강에서 재첩을 건지기(잡기) 위해
오르내리던 배들의 모습도 정겨웠는데.
그 식당 주인 부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을 하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