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26
[베트남 여행기 - 장례]
그 날은 일행이 다낭에서 약 30키로 떨어진 호이안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도자기마을을 돌아 본 후 배를
타고 투본강을 거쳐 호이안으로 들어가 시끌로를 타면서 관광지를 돌아 본 후, 저녁식사를 하고 호이안의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다. 식사 후 가이드는 지역을 설명 해 준 후, 물론 유명한 저택(풍흥의 집,
턴키의 집, 광조회관등)과 몇 곳을 돌아본 후였지만, 개인 시간을 준 것이다.
일행이 각자 흩어져 재래시장 쪽으로 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특별하게 관심을 줄 것이 보이지 않는다.
관광지라는 특성이 시골스러움이나 베트남의 재래시장의 멋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낌으로는 그저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려고 하는 상술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지자 투본 강에 홍등이 자리 잡는다. 강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는 느낌이다. 붉은 등, 어쩌면 그 홍등은
중국의 지배를 받을 때, 그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3개 대국과 싸워서 이겼다는 베트남,
프랑스 중국 미국과 싸워 이긴 나라. 우리가 말하는 베트공 전술이 그 큰 나라들을 이긴 것이다.
아내와 그리고 다른 일행 두 명과 마음이 맞아서 함께 시장을 벗어나 또 다른 골목을 들어갔다. 역시 관광지
답게 일 층은 매장이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띈 것, 장례 집이었다. 매장을 치우고 그 자리에 모셔진 고인,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화환들, 몇 사람이 밖의 탁자에 찻잔을 놓고 있었는데, 전부 하얀 옷을 입었다. 장례 집, 그러나 슬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덤덤한 기운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상이었을까? 베트남 국민의 평균 수명이 75세라는데, 의료 시설의 열악함과 의료 복지 수준의 열악함에
비하면 놀랄 정도의 장수국가라고 할만도 한데, 어쨌든 장례 집치고는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다. 조문객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부고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일까? 한 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먼저 일어나 미케 비치로 갔고, 나는 그 맛없는(내 입에는) 커피를 마신 후 천천히
미케 비치를 향해 걷는다. 인도 주변에 있는 상점들, 아침 출근 전에 차 한 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무슨 차일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기억 속에 있는 그들의
향료 때문일 것이다.
해변이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음향기기를 통한 소리가
아닌 악단의 연주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 장례식 운구 행렬이었다. 제일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십자 깃발(병원 기호)을 들고 그 주변에 여러 대의 오토바이가 함께 요란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운구차, 차 자체의 지붕이 베트남 전통 가옥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붕을
짚으로 덮은 것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적재함이 오픈된 차량에 하얀 옷을 입은 악단이 앉아서
연주를 한다. 장례식이 요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나는 급하게 사진을 찍어보지만, 후에 보니 사진이 깨끗
하지 않아서 실망했다.
어제 내가 본 장사 집의 그 고인일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 고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문득
내 4번째 시집에 수록될 “죽음, 그 의미 5”가 생각난다. 세 잎 클로버와 네 잎 클로버에 관한......
후에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장례는 슬픔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내세에 대한 관념 때문일까?
천국을 사모하는 기독교의 장례식에도 보내는 이들의 슬픔은 잠시 헤어짐이라 할지라도 이해하는데,
그들은 어떤 삶과 내세에 대한 기대가 그런 장례식 풍경을 만들었을까?
만일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깊게 경험하고 싶은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