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33
[이사를 하게 되면서]
아주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오산에 거주한 지 9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조치원으로, 그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지난 8월 초, 큰 아들의 학원 차량 운전기사를 4년 째 하다가 쉬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니 큰 아들이 곧
지입차를 구해놓고 쉬라고 한다. 내 계획은 년말 까지 쉬고 내년부터 시에서 하는 공공근로를 하며 용돈이나
벌어 쓰려고 했다. 생활비는 두 아들이 아내의 통장에 보내주고 있으니 나는 내 필요 부분의 용돈만 벌면
되기도 하고, 차마 용돈까지 아들들에게 손을 벌릴 나이는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쉬면서 문득 작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긴 큰 아들을 영국 유학을 보낸 후에 작은
아들에게 원망듣기 싫어서 작은 아들도 대학을 마친 후 큰 아들 곁으로 보내 삼년을 공부하게 했다.
큰 아들은 칠 년을 영국에서 공부했으니, 그렇게 두 아들을 영국 유학을 하게 했는데,
아이들이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IMF를 겪었다. 부천에서 하던 작은 공장은 포기 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우리 부부가 반 지하 방 두 칸을 얻어 월세로 살고 있었다. 더구나 그
시절 형님의 부재로 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야 했고, 어머니는 15년을 내가 모시고, 그리고 장례까지 모셨다.
아들들은 귀국해서 우리의 삶을 보더니, 학원 쪽으로 눈을 돌렸고, 다른 학원에서 얼마간의 생활을 하더니
오산 세교 지구에 학원을 차렸다. 물론 빚으로 시작한 학원이었지만, 그런 이유로 우리 부부는 오산의 임대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학원은 자리를 잡았고, 3년 전 오산 학원의 확장을 하면서 작은 아들이 세종으로 분가를 해서 그곳에 학원을
차렸는데, 지금은 200명이 넘는 원생들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4년을 큰 아들 학원에서 일을 했는데,
작은 아들도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작은 아들 학원 운전 좀 해 줄까?”라고 했더니 아내가 작은 아들에게 말을 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펄쩍 뛰더란다. 그냥 편하게 지내시라면서, 그 때부터 아내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아내 역시 아비가 작은 아들도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내 성격을 아는 터라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내 말
한 마디에 용기를 얻은 것이다.
작은 아들이 연락을 했다. “그러면 운전보다는 관리를 좀 해주세요. 학원에서 쓰는 차가 25인 승 버스와
승합차 몇 대가 운행을 하는데, 운행관리를 하시면서 갑자기 운행할 일이 있을 때 한 번씩 하시는 것으로요.”
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용돈을 그냥 드리는 것 보다는 그렇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대신 조금 더 드릴게요.”한다. 그 말은 곧 승합차 운전기사 보다는 조금 더 넉넉히 주겠다는 말.
기분이 좋다.
내 생각은 세종 시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원룸 하나 얻어서 생활하면서 주말에 오산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내 문학 생활의 가장 활발하고 즐거운 곳이 오산이기도 했고, 비록 임대지만 30년은 살 수 있는 곳이고,
생활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작은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안 돼요. 늙어 가실수록 함께 계셔야 해요.” 아들의 말에 아내가 대답한다.
“그럼 이 돈으로 그쪽으로 내려가서 방이나 한 칸 얻을 수 있겠니?” 하긴 임대 보증금이 사천 만원이 조금
넘지만, 아들 학원 있는 곳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용인 것이다.
아들이 말한다. “기다려 보세요. 어떻게 해 볼게요.” 지난 10월 초순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