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34
[이사를 하게 되면서 2]
지난 10월 21일 작은 아들이 오라고 한 조치원 역 근처의 아파트로 갔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네 곳의 아파트를 구경하고, 그 중에 한 곳을 정하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일에 조금 놀랐지만 아들은 태연하게
웃는다.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23평, 오산의 아파트보다는 조금 좁지만 두 식구가 사는 데는 전여 모자라지 않은 넓이이다. 안방과 서재,
그리고 자질구레한 것을 넣어 둘 수 있는 작은 방, 그만 하면 괜찮은데, 어쨌든, 한 곳을 정했다. 급매물로 나온
물건이라서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아들이 말한다.
이제 내가 조치원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한 이유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것은 아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 말을 정리하자면
1. 세종은 집값이 많이 비싸요. 그래서 우리 형편으로는 어려 워요.
2. 여기서 세종까지는 10킬로 정도이니 출퇴근이 10분에서 15분이면 가능한 거리예요.
3. 조치원 역이 바로 가까이 있어서 아버지께서 문단 활동하시기에 불편하지 않으실 거예요.
(하긴 지금 오산의 집에서 서울까지는 1시간 30분 이상 잡아야 하는데 열차는 서울 역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면 갈 수 있다.)
4. 세종보다는 시장 가깝고, 조금 세월이 묻은 도시가 어머니께서 생활하시기가 더 편하실 거 예요.
5. 두 아들이 지금은 생활비를 드리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만일, 그런 사정이 있으면
이 아파트를 모기지로 해서 생활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런 일은 없겠 지만요.
그리고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월세로 낸 돈이 아마 삼천 만원은 넘을 거예요. 앞으로도 그렇게 월세를 내야
하고요. 하긴 그랬다. 지금은 일 년에 사 오백정도의 월세가 될 테니 말이다.
다음 날, 우리 부부는 조치원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아파트 주변과 조치원 역과 역 앞의 중앙시장, 그리고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고, 아파트 안에 큰 마트가 두 개, 삼분 거리에 하나로 마트. 오 분 거리에 조치원 역.
칠분 거리에 중앙시장, 아파트만 나서면 바로 먹자골목,
내가 서울 행사에 갔다가 마지막 열차를 타고 내려와도 집에 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오산에 살면서도 늦으면 집까지 2-30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걱정은 없는 것이다.
때로 부산이나, 대구, 대전의 행사나 모임에 갔다가 늦은 밤 열차를 타면 수원에서 내려 택시비 2만 원 정도를
주기도 했는데, 아내도 그만하면, 이라는 표정이다.
우리가 좋다고 하자, 아들은 23일 부동산으로 오라고 한다. 그리고 곧 계약을 한다. 그것도 내 이름으로,
얼마의 대출도 받기로 했다. 아들의 학원 운영자금을 돌리고, 모자라는 부분과 리모델링 비용, 이사비용 등을
계산해서였다. 물론 집을 구입하는데 이 곳의 임대보증금을 보태기로 했다. 그것은 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아들도 그 정도는 계산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들이 도와주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세종에 내려와 처음 60평 정도로 시작한 학원이
지금은 200평, 학생이 2백 명이 넘는다니, 성공이라면 성공이지만, 아들 말로는 삼 년 동안 벌어서 확장하는데
돈이 다 들었단다. 그러니 아들 수중에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들은 늙어가는 부모를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낸다. 고맙게도
계약서를 들고 올라오는 길, 일찍 결혼해서 일찍 낳은 자식들, 돈 모을 기회도 없이 두 아들 기르고 공부시키
느라 내 집 한 칸 없이 살아온 세월, 이제 그 보상을 받는가 싶다. 하긴 50대 중반부터 생활에는 내 힘이 들지
않았으니, 그것도 호강이라면 호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