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41
[일본 여행 둘째 날 2]
버스 안내판이 보였다. 305번 버스의 노선이 확실한 지 알아보고 싶지만 일본어를 알지 못하니 그저 눈뜬
장님이다. 아내가 뒤에서 무엇이라 말을 하는데, 아마 그거 뭐하려고 보느냐?, 는 핀잔같이 들리는데, 마침
우리 곁에 작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던 젊은 여자가 일어서더니 버스 도착 안내판을 보더니 한국말로
한다.(우리나라의 버스 도착 안내판과 비슷하다.) “305번이 가는데 5분 후면 오네요.” 자신이 한국 사람
이란다. 직장인이라기보다 가족이 일본에 살거나 아니면 일본 사람과 결혼한 여자이겠지.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 오르면서 표를 뽑는다. 번호가 찍혀 나온다. 운적 석 위의 표시판에 내가 뽑은 표의
번호가 뜬다. 90엔, 그리고 몇 정거장을 지나면서 그 수가 올라간다. 100엔, 110엔, 듣기로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시간을 잰다. 안내판에는 한글로도 지금 내릴 정거장과 다음 정거장을 알려주지만,
도대체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은 참 잘 되어 있다. 한 번 타면 같은 시내 구간의 요금이 같고, 기껏해야
100원이나 200원을 더 내면 되는데, 요금 판을 보니 처음 탄 사람의 요금이 400엔을 넘어간다. 한 노선을
한 번 타고 가는데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하루의 버스비로만 만 원 이상을
쓸 수도 있겠다는 계산을 해 본다.
30여 분이 지나는데도 후쿠오카 타워라는 글씨가 뜨지 않는다. 조금 걱정이 되고, 아내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손님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종점이 가까웠다는 느낌이 든다. 운전 석 뒷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기사에게 물었다. “후쿠오카타워?” 기사가 나를 힐끗 보더니 웃는다. 그리고 손으로 두
개를 펼쳐 보인다. 두 정거장 더 가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내릴 때 안내판에는 후쿠오카 타워가 아닌 다른
이름이었다. 묻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버스에서 내려서 좌우를 살펴본다. 대충 어느 쪽으로 가면 모모치 해변인지 감은 오지만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지나가는 중년 여인에게 묻는다. 여자가 웃으며 손으로 가리킨다. 내가 고맙다고
우리말로 하자 환한 웃음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친절하다 했던가? 그 친절은 여행 내내 확인하게 되지만,
그래도 역시 도움 받기에는 여성들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속웃음을 웃는다.
해변은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국에서인가, 저 많은 모래를 수입해서 만든 인공 모래사장
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와! 하고 놀라야 하는데, 놀라줄 수 없는, 하긴 대단하기는 하다. 어쨌든 산책하는
사람 몇 팀 외에는 그저 조용하다. 그곳에서도 역시 한국 모녀를 만나고 그들이 사진을 찍어준다. 다낭에서
도 한국 사람을 자주 만났는데, 여기도 그렇다.
조금 걸어 나와 후쿠오카 타워에서 전망대에 오른다. 여기도 경노 우대가 있어서 아내의 주민등록증으로
두 사람이 우대 표를 받는다. 그리고 전망대에 올랐지만 역시 와!하는 느낌은 없다. 그저 어느 도시에서나
전망대에 오르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내하는 아가씨가 한국어로 말을 한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나보다,
했는데, 그 아가씨도 한국인이었다. 직장이라고 한다. 젊은 20대 여자 청년이 엘리베이터 승무원을 하려고
일본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傳多驛이라는 한문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적응되는 모양이다. 저 한문이 바로 하카타 역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 전다역, 하여튼 버스에 오른다. 가격은 역시 240엔, 오백 엔짜리를 기사에게 건네주니 돈 통에
넣고 버튼을 누르자 500엔이 잔돈으로 바꿔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20엔을 찾아 준다. 우리 버스는 돈을
넣으면 거스름돈만 나오는데, 여기는 다르다. 그 돈 만큼 소액 동전으로 교환되는 기계인 것이다.
버스는 하카타 역을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