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47
[열차 안에서]
지난 1월 4일, 내가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인 착각의 시학의 신년 모임이 있었다. 조치원으로 이사
온 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열차는 미리 표를 예매하는 습관을 들였다. 한 번 좌석이 없어서 혼이
난 기억 때문이었고, 이사 온 후 벌써 서울을 5-6회 다녀 왔으니 자주 가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전
정도는 그 시간에 가서 자리가 있든 없든 표를 구입하는데 대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열차를 타고 내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여자 두 분이 앉아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행? 그럼 내가
잘못 알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대화를 하고 있다가 내가 곁에 서서 “혹 자리가?”라고 말
하니 한 여자 분이 일어선다. 그러면서 “내 자리는 조치원까지이고 여기서 부터는 입석이에요.”라고 하는
것이다.
‘아! 이런 방식의 표를 구입하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여자 분이 타는 곳에서 조치원
까지는 자리가 있었고, 그 자리가 내게 예약한 자리였으며, 그 다음부터 그 여자는 서서 가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런 방식의 열차 표 구매를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여자는 일어서고, 나는 내 권리인 내 자리에 앉으면서도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 그리고 긴 시간을 서서 가기가 쉽지 않은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두
여자는 대화를 계속하는데, 동행은 아니었고, 열차 안에서 만나 대화를 하게 된 관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문학에 관한, 그리고 낭송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그 대화의 자리에 끼어들었고,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괜히 끼어
들었다.’라는 후회였다. 내 옆에 앉았던 여자 분이 천안에서 내린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후회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서서가는 여자는 내린 여자와의 대화를 이어서 내게 말을 건넨다. 자신이 하고 있는 시낭송에 관한 이야기,
낭송 강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아는 시인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내게 아느냐고 묻고, 물론 그 중에
내가 잘 아는 시인도 있었으니, 대화는 계속되게 된 것인데,
그 중에 내가 한 말은, “그 분은 잘 모릅니다.” “아! 그 분이요? 잘 알지요.” 정도였을 뿐, 이야기의 줄거리는
여자 분의 것이었던 것이다, 잠시 내가 생각한 것은 ‘이 여자 분의 자랑이 적어도 1톤 트럭 한 대로는 부족할
양인데.’라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자신과 자신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자랑이 90%가 넘는
양이라고 판단될 정도였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른 척 하고 신문이나 읽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내가 내리는 수원까지 그렇게 여자의
자랑은 계속되었고, 그러니 내가 내린 후 누가 그 여자 분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을까? 그것이 궁금할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수원에서 전철로 모임 장소로 가면서 그제야 나는 신문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열차
에서 잠을 자는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열차 시간을 맞추려고 서둘러 수원에 오니 40여분 남는 시간, 저녁을 먹기 위해
수원 역 건너 시장 쪽 식당으로 들어가 순두부를 시켜 먹으면서, 이미 마신 술이 아니었다면 술 한 잔 해도 될
만한 맛이 있는 식사, 메뉴판을 보니 소주가 4천원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논현 동에 갔다가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 정식 8천 원인데 반찬이 괜찮아보여
서 소주 한 병을 시키려다 포기했다. 소주 한 병이 5천 원, 그러니 라면이나 우동에 버금가는 가격이 된 식당
소주 가격, 이제 식당에서의 소주는 포기해야 할 것이고, N/1 이라는 문제가 이제 서서히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없으면 모임도 포기하고, ‘내가 쏠게!’ 라는 말도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시간도 멀지 않
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