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52
[화장실에서]
세종 시 조치원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이 글이 언제 소개될지 모르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20년 1월 19일이니, 만 두 달이 되는 날이다.
‘조치원 역’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 것 외에 조치원에 살면서 느끼는 것을 쓰는데, 하필 화장실에 관한 글인
것이 조금 무안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선 느끼고 경험 한 일을 쓰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조치원의 재래시장인 중앙시장, 그 크기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들을 보면서 전에 살았던 오산의
오매시장보다 그 규모가 크다는 것에 놀랐지만, 동해의 시장이나 부산의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자갈치 시장
을 아우르는 시장, 그리고 대전의 중앙시장 등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하게 책임지
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올망졸망한 시장, 흥미로운 시장은 이런 대형 시장보다는 시골의 시장, 즉 정선 장이나 연천군 전곡의 시장
이며, 그것도 장날의 노점들과 어른들이 조금씩 내다 파는 야채들, 그런 모양들이 더 소박한 즐거움을 주고,
그런 장에서 먹어보는 먹 거리들은 흥미와 맛을 누리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조치원 중앙시작에(물론 지금도 자주 가는 편이지만) 갔다가 급한 일이 생겼다. 화장실 문제
였다. 시장 내의 공중화장실을 찾아 갔고, 변기에 옷을 내리고 앉으려다가 우연히 고개가 돌아갔고, 그리고
놀라 일어나 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아실 것이다. 몸은 급한데,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
아 헤매고....
세종시, 아들의 학원에 갈 일이 있어 가다가, 급해진 몸으로 들어간 대형 건물, 식당과 다른 매장들, 학원, 의
원 등이 집합적으로 있는 큰 건물, 일층에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더니, 웬일! 번호 키가 자리 잡고 무덤덤하게
문을 지키고 있다. 물론 그 번호는 단순한 번호일 것이다. 공공칠 빵이거나 일이삼사이거나. 하지만 내게는
닫힌 문, 이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은 열려 있다. 또 다른 상가, 또 다른 날, 역시, 보이지 않는 휴지, 그 후로
내 주머니에는 최소한의 휴지가 준비되어 있다. 여행 가방에 세면도구가 언제나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
다.
오래 전, 서울시에서는 공공건물이거나 상가, 주유소 등의 화장실을 공공 화장실화 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
(화장지, 청소 물품 등)을 지급하여 주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공공건물에 휴지가 없다! 처음에는
불쾌한 생각도 들었지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도 건물 관리를 위한 조치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휴지가 비치되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화
장실 입구에 두루마리 휴지라도 걸려 있어서 필요한 만큼 챙겨서 들어가면 되기 때문인데, 지금 이곳 조치원
으로 이사 온 후부터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휴지가 비치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
린 것이다. 문을 열고 눈으로 확인 한 후에 사용하는 것,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문득 ‘한국 사람에게 술 인심과 담배 인심은 후하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물론 이 말도 이제는 사라지는 말
이 되어버렸고, 소주 한 병이 오천 원이 되어버리는 일부 식당에서는 술조차도 먹기가 쉽지 않아지고. 담배
역시 그 가격이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인심을 들먹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화장실에 관한 인심이라도 후해 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것은 사람에게 필수적인 육체
의 욕구이며, 삶의 리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