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오랜만에 소설 한 편을 소개 해 드립니다.
어린 시절을 최전방 임진강에서 성장한 필자의 경험을 소재로 삼고 이야기를 덧붙인 소설입니다.
다만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나라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아픔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
에서 이 소설을 집필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소설은 밴드 기준으로 2일에 1회로 약 25회 정도 소개 될 것입니다.
임진강 : 수한이 죽다
1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늦봄의 어느 날 새벽, 새벽이라기보다는 오밤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새벽 3시쯤 진철은 잠에서 깨어났다. 홑이불은 발끝에 밀려 있었고, 몸은 땀으로 끈적거렸다.
입이 말랐다. 땀으로 내보낸 수분의 양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거나, 어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한 잔 나눈
술이 깨면서 수분 부족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어두운 거실을 발의 느낌으로
더듬으며 걸어 주방 옆에 있는 냉장고의 문을 열자 냉장고 안에 숨어있던 불빛이 옥에서 탈출하듯 튀어나와
주방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그는 물병을 찾아 한 컵 따라 꿀꺽꿀꺽 마신다. 찬 물이 그의 목을 통과하면서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그는 정신을 차린 후 담배를 찾아 한 가피 꺼내들고 라이터를 집은 후 현관문을
열고 중간 계단으로 가서 불을 붙인다. 그의 아파트는 복도식이 아니라 계단식이어서 현관을 나오면 엘리
베이터가 있고 엘리베이터를 감싸 돌아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는 담배 한 모금 깊게 빨아 들이킨 후 한 번에
내 뿜는다. 9층에서 내려다보이는 1번 국도위에는 그 시간에도 차들이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다. 대부분 화
물차들이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화물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굉음으로 들린다. 그 도로 위를 가로질러 놓인
고속도로 위로도 국도와 마찬가지로 화물차들이 질주를 하고 있다. 아래 1번 국도의 화물차 속도와 고속도로
의 화물차 속도는 달랐다. 고속도로의 차는 휭 하고 지나가지만 1호 국도의 화물차는 윙윙거리며 덜컹덜컹 지
나가고 있다.
담배를 다 피운 그가 현관문을 여는데 삐꺽 소리와 함께 센서가 정확하게 불을 켠다. 사람의 손이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사람의 손에서 제조된 기계들이 더 정확하다. 앞으로는 기계에 의해 조정 받는 쪽이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기계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가고, 기계가 알려주는 대로 조리를 끝내고, 기계가 알려주는 대
로 정보를 얻곤 한다. 그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가족들이 깰까 싶어 살며시 조심스
럽게 닫는다. 거실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설 때 현관의 불은 꺼졌고 거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똑바로 누우니 천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그 소리는 쥐들의 달음박질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파트에 쥐는 없다. 그런
데 왜 쥐들의 달음박질 소리를 생각했을까?
옆으로 돌아눕는다. 하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스마트 폰을 열었다. 그 시간에도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고 댓글을 다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들이 이 시간까지 잠도 자지 않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는 이유가 무엇
일까? 이른 더위가 저 사람들의 잠을 쫓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낮에 잠자고 밤에 글을 쓰는 부엉이 족이
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신처럼 한 잠자고 더위에 잠이 깬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스마트 폰
을 들여다보다가 끄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자야하는데, 내일 움직이려면 잠을 자 둬야 하는데.’
내일도 계획된 일이 몇 가지나 있다. 그 중에 게을러서 미룬 일도 있고, 약속된 일도 해야 하는데, 자야한다
는 압박감이 잠을 더 멀리 쫓아내는 것 같다. 정신이 더 말짱해지면서 잠을 더 자야 내일 활동하는데 힘이 덜
들것이라는 생각만 가득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