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2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잠이 들었고, 다시 잠에서 깬 것은 오전 5시, 겨우 두 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난 것이다. 목이 말랐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어나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일어나서 머리가 복잡하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흔히 꿈을 꾸고 그 꿈의 내
용이 뇌 속에 남아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꿈을 무시하는 편이었기에 머리가 복잡하다는 느낌
이 들자 그 두어 시간의 잠을 자면서 어떤 꿈을 꿨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꿈을 꿨나?’
분명 꿈은 꾸었다. 하지만 무슨 꿈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때로 아내가 밤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하거나 어떤
일을 겪은 후 ‘그런 일을 겪으려고 그런 꿈을 꾸었나?’하면서 꿈 이야기를 해도 자신은 무심결에 듣고 넘기거
나 무시하곤 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신경 쓰이는 것도 없다. 책상 앞에 앉아서 어떤
꿈이었는지를 생각하다가 답답할 지경에 이르자 담배를 한 가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갔다. 1번 국도에 버스
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아마 첫 버스일 것이다. 택시도 지나간다. 아파트와 철로 사이에 세운 방음벽의 능
력을 무시라도 하는 것처럼 전철 바퀴는 레일을 딛고 유난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
‘아!’
자신의 머리에 한 가지 그림이 떠올랐다. 꽃상여, 상여에 빨간 꽃 치장을 참 예쁘게 했다! 는 생각이 든다.
'왜, 빨간 꽃이었을까?’
상여에 종이로 하얀 꽃을 만들어서 매달았던 시절이 있었다. 진상리, 꽃상여를 떠올리면서 진상리를 기억해
냈고, 진상리를 지나 대직방과 진상방 사이의 농로 곁 작은 언덕에 세워진 상여 집을 떠올렸다. 작은 움막이
었는데, 그늘 진 곳에 지어놓은 움막은 늘 어두웠고 침침했다. 어린 시절 그쪽으로 지나갈 때마다 귀신이 나
타날 것 같은 기분에 오금이 저렸던 것도 생각났다.
‘상여 꿈을 꾸면 좋은 일이 있다고 했지?’
‘꿈은 현실에서 반대로 나타난다.’라고 말하던 마을 어른이 있었는데,
‘그런데 왜 진상리가?’
진상리를 떠올리자 이제는 상여 보다 진상리가 더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진상리, 좋은 기억 보다는 아픈 기
억이 더 많은 마을, 그래서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연천!’이라고 짧게 대답을 하면서도 굳이 군남면
진상리, 임진강 변의 작은 마을이라고 까지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하는 ‘부산’ ‘전주’
‘밀양’ ‘광주’등으로 추억을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하는 답변과는 전혀 다른, 그만이 가지고 있는 입장의 답변
이다.
담배 연기가 베란다 창문을 빠져나가 벽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허공에 한숨을 데리고
오르는 것처럼.
강원도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이주를 따라 전곡 읍에서 얼마간 살았고, 어머니께서 전곡극장 앞에서 풀빵 장
사를 하셨다는 것과 잠시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고 그가 앉아 있을 때 검은 손이 쑥 들어와 풀빵 몇 개를 집어
갔고, 그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없는 상태로 다시 부모님을 따라 진상리로 이사 간 후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내면서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는 그로서는, 물론 친구들과의 즐겁
던 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려면 어둡고 아픈 기억이 앞서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장터, 가설극장, 민둥산, 임진강, 지뢰, 군인들, 공비출현, 밤마다 귓속을 파고드는 대남 방송의 윙윙거리는
소리 등등의 기억들이 조각조각 한 편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그런 꿈을?’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