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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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지체 없이 회사에 결근을 통보하고 작은 가방에 삼일동안 사용 할 속옷과 세면도
구 등을 담고 서제를 나와 거실을 지나는데 갑자기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를 보는 아내는 “어디
가려구?”하고 물을 뿐 굳이 따지거나 확인할 생각이 없는 무덤덤한 표정을 보였다. 그것은 아마 시간만 나
면 여행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이 삼 일씩 돌아다니다 오는 남편의 습성을 40여 년 동안 보아온 탓이
기도 할 것이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볍게 답을 주었다. “연천에 살던 그 녀석이 죽었다는군.” 그의 이
대답에 아내는 더 이상 간섭을 포기했는지 묻지 않았고 “잘 다녀와요.” 라는 말로 쉽게 그의 걸음을 풀어
주었다.
어쩌면 아내에게 자신의 성장기를 이야기 할 때 그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또 그 사람 이야기야!” 하고 대꾸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기 전에 진철은 신문을 한 부 산다. 전철로 소요산까지 한 시간 반은 가야하고 다시 버스나 열차를
타고 전곡까지 가야 한다. 그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철을 타면서 곧 눈을
감는다. 그 녀석의 모습과 함께 어울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경옥이......
그러고 보니 경옥 때문에 수한이와 몇 차례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
그 때도 진철은 남자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고, 여자 아이들은 장터에서 고무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두 편으로 나뉘어 하는 전쟁놀이는 언제나 북한 공산군과 남한 국군의 전쟁이었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지
는 쪽이 북한괴뢰군이 되었다. 장터를 중심으로 마을 골목골목이 그들의 전쟁터가 되었고. 먼저 보는 아이
가 총을 쏘면 상대는 죽는다. 하지만 상대로부터 우리 편에서 한 명이 죽으면 같은 숫자의 죽은 아이들은 되
살아났다. 그래야 전쟁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이 한창 놀이에 빠져 골목을 누비고 있을 때, 장터에서 여자아이들의 소스라치는 소리와 함께 욕
설이 뒤섞여 나오고, 진철의 귀에 경옥의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입으로 탕! 탕! 하는 전투 소리가 중단됐다.
그리고 장터 가까운 곳에 있던 남자 아이들 몇이 장터로 나갔다. 진철도 장터로 가서보니 수한이가 한 쪽에
서 웃고 있었고 수한이를 향해 여자 아이들이 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옥을 보았다. 경옥의 한 손에 잘라진 고무줄이 들려 있었고, 경옥은 그 고무줄을 흔들며 수한에게 바리바
리 욕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저 새끼는 우리와 같이 놀다가 언제”
진철은 함께 놀다가 빠져나가 여자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한 수한이 밉고 화가 났다.
결국 진철과 수한은 지나가던 어른들의 야단을 맞고 나서야 싸움을 끝냈고, 한 동안 서먹한 관계로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6학년 여름이었다. 아이들은 더위를 피해 임진강으로 몰려갔고, 헤엄을 치며 놀았다. 남자아이들은 화이트
교 난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곤 했는데, 누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다이빙을 하는가, 시합을 하고 난간에
남아있는 총탄의 흔적을 진흙으로 매우기도 하며 한 낮의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
대로 난간 밑의 소용돌이치는 곳으로는 들어오지 못했고, 자기들끼리 가슴정도 차는 깊이에서 물싸움을 하
면서 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