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3회
“저기 봐! 수한이지?”
한 아이가 말하자
“맞다! 저 새끼 수영하러 왔나본데 우리 저 새끼 물 먹여 줄까?”
아이들의 심술이 의논을 시작하지만 결코 그렇게 실행 하지는 않았다. 잘못하면 강가에 있는 모든 돌멩이
들이 수한이의 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한이가 가는 쪽은 다리 아래였고 그 주변에는 여자 아이들이 엉덩이를 하늘로 향하고 엎드려 다슬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수한이는 여자 아이들을 지나 그 아래에서 혼자 수영을 하려고 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1학년인 작은 여자 아이가, 그 아이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슬기를 건지다가 검은 펜
하나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수한이가 그 여자 아이 곁을 지나치려고 할 때 여자
아이가 펜의 뚜껑을 억지로 잡아 빼려고 힘을 쓰는 표정이 보였는데, 아이의 손에서 펜의 뚜껑이 분리되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여자 아이의 비명 그리고 여자 아이가 뒤로 넘어지면서 물에 빠졌고, 난간에서 다이빙
하려고 폼을 잡던 아이들이 모두 놀라 그쪽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는데, 그때 수한이가 후다닥 쫓아 들어가
여자 아이를 일으키고 자신의 하얀 속옷 벗어서 여자아이의 손을 둘둘 감고 그리곤 아이를 업고 마을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만년필 지뢰, 사람들은 그 지뢰를 그렇게 불렀다. 장마가 끝나면 강가에 그와 비슷한 지뢰들이 수없이 많이
떠내려 오곤 했는데, 만년필 지뢰뿐 아니었다. 벤또 지뢰라는 도시락을 닮은 지뢰도 있었고, 때로는 박격
포탄도 녹슨 채 강가에 밀려나와 있기도 했다. 어디 그것뿐이랴, 전쟁 때, 적군의 진격을 막으려고 설치해
놓은 삼발이, 똑딱이 같은 지뢰들도 있어서 누군가 통행한 흔적이 없는 곳은 사람들이 드나들려 하지 않았
고 마을만 조금 벗어나도 철조망을 치고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표시로 삼각 양철 조각에 해골바가지를 그려
놓고 빨간 페인트로 엑스 자를 표시해 놓은 곳도 많았다.
수한이는 그 일로 마을의 영웅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 여자아이는 손가락이 몇 개
잘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지만 얼마 후 그 아이의 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다. 잘못하면 애 잡
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마을로 돌아다녔었다.
어쨌든 그 일로 인해 수한이는 마을 아이들의 그룹에 당당하게 들어 올 수 있었고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
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으며 아이들은 그 의견에 동의를 표시하고 가능하면 수한이의 의견을 존중
하고 따라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었다.
8
“새끼가, 하긴 살고 싶지 않았겠지, 나 같아도 살고 싶지 않았을 거야.”
곁에 앉아있던 근석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말을 거들어 주었다.
“병신이 꼴값한다고, 에이!”
석중은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는다. 벌써 취기가 돈 얼굴인데, 하긴 석중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은 뻔하다. 그나마 친구들 중에 가장 수한이를 위해 애를 썼던 녀석이었으니까 말이다. 들리는 말로는
수한이가 군의 생활지원금을 받는 일이라거나 병원에 가는 일, 그리고 요양 보호사가 일주일에 서 너 번씩
수한의 집에 들러 빨래를 해 주고 청소도 해 주고 반찬도 살펴 주도록 조치를 취한 것도 그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