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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4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3.18|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4

 

 

저녁나절이 되어 수찬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수정과 그의 가족들이 빈소로 들어온다. 아마 근처에서

만나서 오는 모양이었다.

석중과 준호는 그들이 영정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빈소로 들어간다. 이미 이곳까지 오면서

계속 울었을 수정은 아직도 눈물이 남았는지 엎드리자마자 어깨가 들썩거린다.

잠시 그들의 대화가 계속되었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빈소에 자리를 잡고 선다. 잠시

후 수찬과 수정은 진철과 일행이 앉아있는 곳으로 와서 인사를 했고, 고맙다는 말도 했다.

 

조문객도 아직은 몇 사람밖에 없었다. 하긴 조문객이라고 해야 고인의 친구이거나 수찬과 수정의 친구들

중에 그나마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군수가 보내준 작은 꽃바구니 화환, 이것도 주변의

눈을 생각한 조치였을 것이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 몇 명이 둘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

내고 있었지만 이것도 시간이 흐르자 하나 둘 볼일이 있다거나 내일 일을 위해서 가야 한다고 돌아가는

사람을 제외하니 그 녀석의 장례식장은 썰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진철 역시 그런 분위기가 영 마뜩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까지 일어서면 남는 것은 석중과 두어 명 밖에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수한이는 웃고 있었다. 조금 일그러진 입술. 하얗게 드러난 한 쪽의 인조 눈알, 그리고 감은 것같이 보이는

다른 눈, 만일 몸 전체를 찍은 사진이 있었다면......,

그 녀석이 한 쪽 다리를 절면서 걷던 모습이 떠올랐다. 심한 절뚝거림은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티가 나는

걸음 걸이었다. 그래도 한 쪽 눈이 괜찮을 때는 그 몸으로 소꼴도 한 짐 베어 지고 다녔고, 나무도 한 짐씩

지고 나르기도 했었다.

 

한경이나 석중이나 근석이나 세 녀석은 아무렇게나 벌러덩 누워 잠을 청한다. 그래도 저 녀석들이라도 함께

있으니 수한이는 덜 서운할 것이다. 진철도 한쪽에 누웠다. 베개도 없이 반듯하게 누우려니 몹시 불편했다.

그는 모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자기의 어깨걸이 가방을 가져다가 머리를 베고 눕는다. 한결 편하다. 그렇

게 누운 채로 잠을 청해보지만 오히려 술이 깨는 기분이었고 머릿속에는 수한이의 사신 속 웃는 모습이 어른

거린다.

 

수한이가 중학교 일학년 때던가? 수한이의 집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난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수한이

부모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의 발단은 수한이 아버지의 노름 때문이었는데, 가을걷이가 끝나면 하릴없는

마을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화투놀이를 즐겨했다.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10원짜리 나이롱 뻥이나 민화

투를 쳤고, 아이들은 성냥개비 내기 돌이 짓고땡을 했으며 남자 어른들은 제법 노름같이 육백이거나 섯다,

또는 돌이 짓고땡을 하는 것이 그 지역의 겨울나기였던 것인데, 진철의 집도 겨우내 노름집이 되곤 했던

것은 가게인데다가 술을 팔았고, 진철 엄마의 비빔국수 솜씨가 좋았던 탓이기도 했다.

 

덕분에 진철 형제들은 어른들이 모여 육백을 치는 날이면 잠자는 것을 포기하곤 했다. 밤참으로 내오는

엄마의 비빔국수 때문이었는데 엄마는 비빔국수를 내놓는 것으로 약간의 수입을 챙겼고, 진철도 어른들의

심부름 같은 것으로 얼마간의 용돈을 벌기도 했던 것인데, 수한 아버지는 그보다 큰 노름꾼이었던 것이다.

 

수한의 아버지는 어느 날에는 쌀 몇 가마를 벌었다고 했고, 어느 날에는 집문서를 벌었다고 했고, 어느 날은

탈탈 털렸다고도 했는데, 그 날은 기어코 사단이 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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