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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5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3.20|조회수4 목록 댓글 0

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5

 

 

  

이른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임진강에 가서 어름지치기를 하려고 장마당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굵은 철사를 날로 삼은 썰매를 들고 나오는 아이, 조금 큰 형들은 판자에 칼날을 갈아서 고정

시킨 스케이트를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진철도 집을 나와 장터로 가려고 하는 데 멀지 않은 곳에서

사기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골목을 치고 나왔다.

그래!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고 나 죽자! 애새끼들 다 죽이고 너 죽고 나 죽자!”

수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버지와 엄마가 자주 싸운다고 하는 말은 수한이가 집으로 와서 저녁을 함께 먹을

때 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싸우지는 않았었다. 한 번씩 부부 싸움이 있을 때면

수한이는 진철의 집에 와서 밥을 먹곤 했는데, 오늘은 유달리 싸움의 기세가 남다르게 드러난 것이다.

이 여편네가,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래, 이 새끼야. 니가 애들 애비냐? 애비노릇 똑바로 해라!”

수한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을 휘저으니 자연이 마을 여자들이 수한이의 집 앞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여자들이 웅성웅성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부부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저런데?”

왜 저러기는, 매년 겨울만 되면 부부 싸움이 이틀 걸러 한 번씩인걸

지겹지도 않나?”

우리가 보기에도 지겨운데 수한엄마는 오죽하겠어.”

보나마나 어제 크게 잃은 모양이구먼

그렇겠지, 수한엄마가 저럴 정도면,”

집을 날렸을까?”

그래도 설마, 집을 날렸을라구. 노름빚이나 잔뜩 졌겠지.”

하지만 여자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전 전곡의 노름판에 어울렸던 수한 아버지는 첫 끗발이 좋아서

제법 땄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잃기 시작했고 판이 끝날 무렵에는 집문서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은 수한 엄마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밤새도록 노름판에 다니는 남편이

밉기는 했지만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 노름판의 생리이기에 크게 사고 치지 않는 한 그저 말싸움

정도로 끝내주곤 했었던 것인데 일의 발단은 어제 낮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한 아버지는 어제도 집문서를 찾으려고 노름판에 나갔고, 나름 빚돈이라도 내보려고 애를 썼지만 집

문서가 날아갔다는 소문이 그 판에 나돌면서 노름빚을 내기도 쉽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집문서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돌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수한 엄마가 구멍 난 양말이라도 기우려고 옆집 여자가 놀러가자는

것도 사양하고 아랫목에 앉아서 바늘귀를 꿰고 있을 때 마당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수한

엄마는 두런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방문을 열고 보니 두 남자가 마당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살펴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구세요?”

하며 목소리를 먼저 마당으로 내보내고 엉덩이를 들며 옆으로 돌아간 치마 말기를 바르게 잡으며 문 밖

마루로 발을 내딛었다.

여기가 박씨 집이 맞지요?”

한 남자가 묻는데 그 느낌에 수한 엄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안는다.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났다는 생각이

퍼뜩 올라온다.

그런데요.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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