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7회
그 날, 몹시도 더운 날이었다. 가뭄이 논바닥을 핥았고 배추도 바짝 태우고 있었기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강에서 미역을 감거나 전쟁놀이에 푹 빠져 있지만 중학교 이상 다니는 아이들은 너나 나나 부모
를 돕기 위해 물 지개를 지거나 드럼통을 리어카에 싣고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요소 비료를 탄 후 배추 뿌리
옆을 조금 파고 한 바가지씩 부어주던 날이었다.
진철이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날 진철 역시 아버지를 따라 배추밭으로 갔고 숨을 헐떡이고
축 늘어진 작은 배추 잎을 보면서 리어카에 드럼통을 싣고 동생과 함께 강에서 물을 길어 밭으로 나르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 낮 뜨거울 때는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에 오후 참부터 시작된 물 길어 나르기는 한 낮의
뜨거움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고, 온 몸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기에 진철은 드럼통
에 물을 길어 담은 후 동생과 함께 물에 뛰어 들었다. 한바탕 물장구를 치고 밭으로 가려고 물에서 나오는
진철의 눈에 수한이가 다리 밑 그늘에 앉아서 무엇인가 내려다보는 것을 보았으나 정신이 팔려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진철은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고, 동생은 뒤에서 밀고 있었지만 동생이 민다는 것을 진철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끙끙대며 뒤꿈치에 힘을 주고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언덕을 거의 올라와 잠시 쉬려고 리어카 손잡이를 내리면서 숨을 몰아쉬는데 그때 등 뒤에서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발 소리가 들렸다. 진철과 동생은 놀라서 우선 몸을 움츠렸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잠시 전 수한
이가 앉아있던 그곳에서 무엇인가 솟구쳐 올랐던 것이 땅으로 후두둑 떨어졌고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였다. 지뢰가 폭발한 것이다. 매년, 몇 번씩 들었던 폭발 소리, 포 사격 소리, 총 쏘는 소리에
익숙해 있었지만 폭발소리와 동시에 그 광경까지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 눈으로 보면서도 영화의 한 장면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동생은 리어카 옆으로 몸을 숙이고 쪼그려 앉았고, 진철은 멍하게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
도 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수한이가! 수한이가! 하는 소리만 맴돌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폭발 소리가
나는 동시에 강변 구멍가게 심씨 어른이 튀어 나왔다. 낚시꾼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예순이 넘은 어른이
었는데, 폭발소리가 나자 곧 사고라는 심증으로 뛰어나와 강으로 무조건 달리기를 시작하셨다. 진철의 눈에
다리 밑에서 무엇인가 꾸물거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진철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슴만 벌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씨 아저씨가 강으로 뛰어가는 동안
마을 안에 있던 어른들이 하나 둘씩 분주한 걸음으로 강을 향해 움직였다.
“어디야, 어디?”
“다리 밑으로 보이는데”
“누가 또 죽은 거 아냐?”
“글쎄 폭발 소리로는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어른들은 부지런히 반 뜀걸음으로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진철의 귀에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그 후 마을에서 여자들의 신발 끌고 뛰는 소리. 멀지 않은 들에서 일을 하다 손을 놓고 강으로 몰려드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얼마 후 진철의 귀에 들리는 소리
“수한아!”
였다.
사고가 나자 곧 삼거리 초소의 헌병이 부대로 전화를 걸었고, 얼마 후 부대에서 지엠 트럭 한 대가 강으로
내려갔다.
마을은 그 날 모든 것이 중지되었다. 들에서 일하던 어른들도 마을로 돌아왔고 강에서 미역을 감거나 다슬
기를 줍던 아이들도 마을로 돌아와서 자기의 가족들이 안전한지 확인을 한 후에 마을의 어른들은 옥경의
주점이나 진철네 가게 앞에 있는 평상 위에 둘러 앉아 수한이의 결과가 어떤지 걱정하며 트럭을 타고 병원
으로 함께 쫓아간 젊은이들이 돌아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기를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기다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