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20회
가족들의 인사가 끝나고 진철도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감긴 눈, 그 눈이 한 세상 사는 동안 보았던 그 많은 일들을 다 담고 있을까?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자신을 입관하는 모습을 본다고 하던데,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을까?
저승사자가 그 곁에서 그의 영혼을 데리고 가려고 대기하고 있을까?
그의 영혼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혹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지 않을까?
힘들고 어렵더라고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하는데 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진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남자 둘이 관 뚜껑을 들어 덮으려고 하다가
“이제 마지막 가시는데 차비라도 좀......”
한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자신들의 수고에 대한 팁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정의 신랑이 지갑을 열어 오만 원 권 한 장을 그들에게 건네주자 한 사람이 받아서 수한이의 두 손
가운데 끼워놓는다. 그 돈은 그들이 입관을 마치고 밖으로 나간 후 그들은 다시 관을 열어 돈을 꺼낼 것이다.
나무못이 관 둘레에 박힌다. 고무망치로 내려치는 소리가 둔탁하다.
못질 소리에 수정이의 입에서 ‘오빠!’하는 소리가 울음과 섞여 튀어나온다.
수정의 남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 뒤를 남은 가족들이 따라 나가고 진철과 한경도 함께 나온다.
이제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11
빈소에는 수정이가 혼자 앉아 있었다.
수찬이는 친구들 곁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그래야 몇 명 되지 않는다. 한 열 댓 명이나 될까?
진철의 눈에 한 번에 다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 장사집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그저 모임정도로 보이는 접객실의 모습이다.
수정과 수찬의 아이들은 접객 실 옆에 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진철은 그들 곁에 가려고 하다가 빈소 쪽으로 눈을 돌리는데 혼자 앉아 있는 수정이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울고 있는 것이다.
진철은 걸음을 돌려 수정이 곁으로 다가서면서 어깨에 손을 얹고
“이제 그만 울지, 동생이 울면 오빠도 마음 편히 가지 못할 텐데”
그러자 수정이 고개를 들어 진철을 보는데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우리 오빠 불쌍해서......,”
“그거야 다 아는 사실이잖아”
수정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빈소 위에 놓여 있는 사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정이의 행동을 따라 진철도 수한이의 사진을 보는데 역시 웃고 있는 얼굴이다.
아니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겠지만 진철은 억지로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얼굴이다.
“우리 오빠, 저 옷,”
수정이의 말을 들으며 진철은 수한의 얼굴에서 어깨 쪽으로 눈의 중심을 옮겼다.
하늘 색 잠바. 그리고 하얀 셔츠. 바지는 무엇으로 입었을까? 검은 색 바지, 아니면 청색 바지?
그러고 보니 수한이가 잘 입던 바지 색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 때 유행했던 고고바지를 아이들이 입고 다닐 때 수한이는 그냥 통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긴 고고바지를 입으려면 양복점에 가서 맞추지 않으면 입을 수 없던 시절,
수한이가 그런 바지를 맞춰 입는다는 것은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랬다. 수한이가 입었던 통바지도 미군부대에서 미군들이 입는 사지 바지를 구해서 수한이에게 맞도록
자르고 바느질해서 검은 물감을 들인 옷이었다. 그 시절에 교복도 그런 교복을 많이 입었던 때였다.
교복을 맞출 수 없는 집에서는 동두천이나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개구멍으로 나오는 군복인 사지 옷을 사서
줄여 염색해서 입고 다닌 아이들이 교복을 맞춰 입은 아이들 보다 많았던 시절이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