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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23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4.08|조회수9 목록 댓글 2

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23

 

 

수정이가 농을 열더니 수한이의 옷가지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처 박아둔 옷들, 수한이는 입던 것을 벗어서 농 안에 집어던져 놓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고, 다시 갈아입을 때도 그렇게 한 모양이었다.

빨래는 언제 했는지, 깨끗한 옷보다 더러워 빨지 않으면 안 될 옷들이 더 많이 보였고,

수정이는 눈물을 찔끔 거리면서 하나하나 접어서 쌓는 것이다.

그러다가 잠바 하나를 들더니 얼굴로 갖다 대고 다시 흑! 하고 흐느낀다.

진철이 보니 바로 사진에서 입고 있던 그 잠바였다.

한경이가 수정이의 그런 모습을 보더니 좇아와 수정이의 손에 있던 옷을 잡아채서 대충 접어서

옷 위에 포개 얹는다.

!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니. 그냥 수한이 편하게 보내줘라. 그 새끼 지가 가고 싶어서 간 건데,

지가 원했으니 우리도 편하게 보내줘야지,”

그러고는 보자기를 묶어 밖으로 가지고 가서 차에 얹어 버렸다.

 

 

13

 

! 너 이 새끼 넌 군대 안가서 좋겠다!”

취해있었다. 술을 별로 마신 것 같지 않았는데,

아니 평상시 보다는 분명 술을 덜 마셨는데 차정이 그 녀석은 취해버린 것이다.

취해서 주정을 하는 것이다. 아니, 군에 가고 싶지 않지만 안 가면 안 되는 일이니 가야하는 것이고,

이제 내일이면 의정부 소집 장소로 가야 하는 차정이 녀석이 수한이를 보면서 한 마디 내지르는 것이다.

차정이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벌겋던 수한이의 얼굴이 더 벌게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사내라면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럴 때는

꼭 죄인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벌써 몇 명을 수한이는 그런 기분으로 송별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누구 집 아들이 군 입대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때부터 그 녀석은 마을에서 어른 비슷한

대우를 받곤 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밥이라도 한 끼 해 먹여 보내려고 했고,

가게에서는 그 녀석에게 술값을 받지 않기도 했다.

그런 어른들의 대접은 살아오라는 부탁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 동안 베트남으로 끌려가는 군인들이 마을마다 넘쳐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뜸하다.

하지만 그래도 군대라는 것이 재수 없으면 파병을 갈 수도 있고, 최전방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인데,

바로 진상리가 최전방이었고 최전방인 진상리에서 군인들의 일상을 보면서 눈과 몸으로 깨달은 군

생활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오빠는 어땠는 줄 알아?”

수정이가 입을 열었다.

어땠는데?”

진철이 되묻자

우리 오빠는 오빠들 한 명씩 군 입대한다고 송별식 하는 날이면 꼭 취해서 집에 왔어.”

하긴 수한이는 술을 그리 즐기지 않았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한두 잔 하는 정도였고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 그 녀석은 술이라면

조심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울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선은 오빠 자신이 군에 갈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 스스로 불쌍해서였을 것이고,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조금 있었던 것 같기도 했어.”

수한이 그 녀석은 오른 손가락 두 개로 잔을 들었다.

그가 잔을 집어 들면 잔은 언제나 조금 비틀어지곤 했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잔을 들면 바르게 집어 들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하긴 숟가락을 잡아도, 젓가락을 들어도 언제나 비스듬하게 잡고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니 잔을 입으로 갖다 댈 때도 당연히 비스듬했고 금방이라도 술잔을 놓치거나 쏟을 것처럼

위태하게 보이곤 했지만 그 녀석은 그렇게도 잘 마시고 먹고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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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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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嘉南 임애월 | 작성시간 20.04.08 수한이는
    입대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겠지요......ㅠ
  • 답댓글 작성자고정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4.09 한 명씩 군에 갈 때, 그 친구는 힘이 없어 보이곤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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