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23회
수정이가 농을 열더니 수한이의 옷가지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처 박아둔 옷들, 수한이는 입던 것을 벗어서 농 안에 집어던져 놓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고, 다시 갈아입을 때도 그렇게 한 모양이었다.
빨래는 언제 했는지, 깨끗한 옷보다 더러워 빨지 않으면 안 될 옷들이 더 많이 보였고,
수정이는 눈물을 찔끔 거리면서 하나하나 접어서 쌓는 것이다.
그러다가 잠바 하나를 들더니 얼굴로 갖다 대고 다시 흑! 하고 흐느낀다.
진철이 보니 바로 사진에서 입고 있던 그 잠바였다.
한경이가 수정이의 그런 모습을 보더니 좇아와 수정이의 손에 있던 옷을 잡아채서 대충 접어서
옷 위에 포개 얹는다.
“야!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니. 그냥 수한이 편하게 보내줘라. 그 새끼 지가 가고 싶어서 간 건데,
지가 원했으니 우리도 편하게 보내줘야지,”
그러고는 보자기를 묶어 밖으로 가지고 가서 차에 얹어 버렸다.
13
“야! 너 이 새끼 넌 군대 안가서 좋겠다!”
취해있었다. 술을 별로 마신 것 같지 않았는데,
아니 평상시 보다는 분명 술을 덜 마셨는데 차정이 그 녀석은 취해버린 것이다.
취해서 주정을 하는 것이다. 아니, 군에 가고 싶지 않지만 안 가면 안 되는 일이니 가야하는 것이고,
이제 내일이면 의정부 소집 장소로 가야 하는 차정이 녀석이 수한이를 보면서 한 마디 내지르는 것이다.
차정이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벌겋던 수한이의 얼굴이 더 벌게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사내라면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럴 때는
꼭 죄인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벌써 몇 명을 수한이는 그런 기분으로 송별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누구 집 아들이 군 입대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때부터 그 녀석은 마을에서 어른 비슷한
대우를 받곤 했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밥이라도 한 끼 해 먹여 보내려고 했고,
가게에서는 그 녀석에게 술값을 받지 않기도 했다.
그런 어른들의 대접은 살아오라는 부탁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 동안 베트남으로 끌려가는 군인들이 마을마다 넘쳐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뜸하다.
하지만 그래도 군대라는 것이 재수 없으면 파병을 갈 수도 있고, 최전방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인데,
바로 진상리가 최전방이었고 최전방인 진상리에서 군인들의 일상을 보면서 눈과 몸으로 깨달은 군
생활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오빠는 어땠는 줄 알아?”
수정이가 입을 열었다.
“어땠는데?”
진철이 되묻자
“우리 오빠는 오빠들 한 명씩 군 입대한다고 송별식 하는 날이면 꼭 취해서 집에 왔어.”
하긴 수한이는 술을 그리 즐기지 않았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한두 잔 하는 정도였고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 그 녀석은 술이라면
조심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울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선은 오빠 자신이 군에 갈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 스스로 불쌍해서였을 것이고,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조금 있었던 것 같기도 했어.”
수한이 그 녀석은 오른 손가락 두 개로 잔을 들었다.
그가 잔을 집어 들면 잔은 언제나 조금 비틀어지곤 했다.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잔을 들면 바르게 집어 들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하긴 숟가락을 잡아도, 젓가락을 들어도 언제나 비스듬하게 잡고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니 잔을 입으로 갖다 댈 때도 당연히 비스듬했고 금방이라도 술잔을 놓치거나 쏟을 것처럼
위태하게 보이곤 했지만 그 녀석은 그렇게도 잘 마시고 먹고 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