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24회
군인들, 진철이 중학생 때 어느 여름, 군인들의 급속 행군 훈련이 있었고
그 행군이 마을 삼거리를 지날 때였다.
군인 중 한 명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데 인솔자가 쓰러진 군인 곁으로 가더니 군화발로
옆구리를 차면서 ‘빨리 일어나! 이 새끼야! 너 때문에 훈련 조지게 생겼어!’ 하는 것을 본 진철의 엄마는
고개를 돌리며 혀를 끌끌 찼었다. 아마 내 새끼도 군에 가면 저런 꼴 당하겠다. 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수한 오빠가 어땠는 줄 알아?”
“뭘?”
“한경오빠랑 진철 오빠 군대 갔을 때 오빠는 삼 년 동안 야전잠바를 입고 다녔어. 여름에도.
그래서 내가 ‘오빠! 날도 더운데 웬 야전잠바를 입고...’ 그렇다고 한 낮에도 입지는 않았지만,”
“그건 무슨?”
“오빠가 말은 안 해도 난 느낄 수 있었거든, 오빠가 군대 간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수정이의 목소리가 조금은 떨리고 있었다.
“미친 녀석!”
한경의 입에서 짜증 섞인 불평이 튀어나온다. 그 녀석의 마음이 고맙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거 볼래!”
수정이가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는데 그것은 M-1 실탄의 탄두였다.
그 탄두에 고리를 접착시켜 목걸이로 만든 것이었는데
“아까 오빠 옷가지 정리하다가 야전잠바 주머니에서 나온 거야.”
하면서 한경의 손에 건네주자 한경이 슬쩍 보고는 뒤에 앉은 진철에게 건네주었다.
아주 오래된, 그래서 반질반질 윤이 나는 실탄.
아마도 M-1 실탄 탄두를 빼서 이렇게 만들고 탄약은 모아서 불꽃놀이 하면서 사용했을 테고
탄피는 모아서 엿장수 주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밭을 갈다 보면 쟁기 끝에 툭 걸려서 나오는 탄피들,
어떤 때에는 탄통에 탄피가 가득한 채로 걸려 나오기도 했고,
녹슨 수류탄이나 불발탄들도 튀어나오곤 했었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면 마을 청년들이나 아이들이 망치나 돌로 탄두 쪽을 톡톡 쳐서 탄두를 분리시킨
후에 탄약을 쏟아 모았고 그랬던 것이다. 그래도 탄피를 분해하는 것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뇌관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한이도 그런 방식으로 탄두를 분리해서 목걸이를 만들어 차고 다녔던 것이다.
“그 탄두를 보니까 생각나는군.”
진상리를 다녀와서 술 상 앞에 앉은 한경이 술을 마시려다 말고 다시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진철은 한경의 말을 들으면서 빈소에 쪼그려 앉아 자고 있는 수정을 본다.
그 옆에는 수찬과 수정의 남편이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유족들을 위한 작은 방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그들은 아이들만 그 방에서 자게하고,
자신들은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문객이 올리도 없지만.
진철은 다시 한경을 보면서 앞에 있는 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고 꿀꺽 삼키며 무슨 일인데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근영이 알지? 그 자식 제대 한 날이었는데,”
근영의 제대를 축하하기 위해 몇 친구들이 어울렸던 날이었다.
전곡 읍으로 나온 수한, 근영, 한경, 차정 네 명은 삼겹살에 저녁을 겸한 술을 한 잔 하고
식당에서 나와 이차로 간 곳이 전곡옥이라는 주점이었다.
흔히 말하는 방석집으로 갔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