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55
[오랜 만의 여의도]
지난 1월 18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시집 출판기념식이 있었다.
내가 그 행사에 초대를 받거나, 또는 그 행사에 꼭 참석할 이유는 없었지만,
마침 그 행사에 참석하는 어느 분을 만나야 할 일이 있어 그곳에 갔다.
결론적으로 만나야 할 분은 만나지 못했고,
나는 그 분과 함께 하려고 했던 문학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조치원에서 열차로 서울 역에 도착하고. 을지로에서 지인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한 후 여의도로 갔다.
역시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교통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빠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모임이나 행사에 가는 경우에는 내 차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라면,
우선 도로의 사정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주차비가 지방보다는 무척 비싸다는 것이
내가 술을 즐긴다는 이유만큼이나 이유가 되기에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로 국회의사당 역에 이르러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쉽게 눈에 들어오는 드높은 빌딩들, 역시 빌딩 숲이라는 말이 틀림없다.
차도와 빌딩을 제외하면 약간의 인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물론 조금 벗어나면 녹지도 있을 테고, 공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강이 푸름을 유지하고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한 바퀴 돌아본다. 70년 대 여의도 비행장(당시는 그렇게 불렀다.)이 있었고,
그리고 국회의사당만큼이나 큰 건물인 순복음 교회를 제외하면 허허벌판 이었던 곳,
당시 나는 빌리그레함 목사의 ‘엑스포 74’에 참석하느라 이곳을 왔었던 기억이 있다.
백만 인파의 집결이라고 뉴스에 소개 되었고,
한국 교회의 부흥기가 이 때로부터라는 말이 있었던 시절이었는데,
그 후로 여의도에 개발 붐이 일어났다.
쌍둥이 빌딩이 들어서고, 수많은 빌딩들이 키 재기를 하고 있는데,
유독 의사당 건물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초라해 져있다.
그런데 나는 건물을 보다가 문득 작고 초라해 진 의사당 속의 내용을 생각한다.
속에 바람 든 무처럼 쓸모없이 퍽퍽하기만 한 사람들, 국가와 국민의 머슴이라는 존재들의 모습이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머슴’이라 칭했는가? 아마 거짓 중에 가장 큰 거짓이 바로 그들을 ‘머슴’이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국민의 눈은 세계를 바라보고, 국민의 가슴은 세계를 살피는데,
그들은 그 작은 건물 안에서 제기차기 놀이만 하고 있다.
그것도 잘 차지 못하면서 몸짓만 우아하거나, 기교 있거나 하는 수준이다.
그조차 누가 예쁘게 보아주는 수준도 못되는데 말이다.
방석놀이라는 게임이 있다. 지금 그들은 그 방석놀이에 빠져있다.
아니 늘 방석놀이에 치중해서, 눈치싸움이 가관이다. 관중은 짜증을 내도 그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관중은 그래도 볼 만한 게임이 자신들의 방석놀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래 전의 의원들에게는 명분과 의리와 체면이라는 것이라도 있었는데,
그리고 하다못해 술자리에서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의해서 국민들이 염려하는 것에
대한 결론을 만들어 내기라도 했는데, 윈윈도 하고, 적당히 밀당을 하면서 서로의 적당한 체면과 명분을
세워주기도 했는데, 지금의 상황을 보면, 객관성도 없고, 사회성도 없고, 중도가 없고, 정도가 없으며,
그것은 그들의 수준이 그렇다고 인정을 한다 해도, 어쩌면 그렇게 체면도 없을까?
그러니 자존심도 없고 자존감도 없는 존재들의 방석놀이만 되 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이번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막상 그 날이 되면, ‘그래도’라는 말로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그래도’를 밀어주는 ‘표’가 있으니, 그들이 결코 겁낼 필요가 없다.
우리는 직장을 잃어도, 사업을 접어도, 집을 못 사도, 그들에게는 영향력이 없는 우리의 형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참 작아져버린 건물이고 내용이라는 사실이 마음 무겁게 다가온다.
앞으로 가능한 여의도로는 올 기회가 없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