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57
[한 달, 그래서 썼지요.]
2019년 12월부터 우리를 위기감에 몰아넣은 코로나19, 날이 갈수록 확진환자가 늘어가고 여러 도시를
공포의 골짜기로 만들어 버린 바이러스 사태는 조치원에 사는 나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 할까? 조치원에는 아직 의심환자나 확증환자가 없지만,
주변인 세종, 공주, 부여, 천안, 청주, 대전 등등에게 에워싸인 형국이라서 마음 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한데,
지난 2월 마지막 주부터 3월 마지막 주까지 한 달 이상을 집에 머무르면서 마냥 티브이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일.
물론 그 기간 동안 집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갑갑해서 가까운 고복 저수지, 항아리 마을, 등을 조용하게 다녀왔고,
시장을 몇 번 다녀왔으며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외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중요하게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시’를 쓰기는 어려웠다.
집 안에만 머무르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것은 아직 내게는 어려운 숙제인 것 같을 뿐이다.
한 달여간을 거의 서재에 머무르면서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숙제 같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늘 머릿속에 담아두면서 줄거리를 생각해 오던 소설,
그것은 내가 자란 마을인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를 무대로, 어릴 적 겪었던 슬픈 일들 중에서
몇 가지의 소재를 중심으로 소설화 한 내용 인 것인데,
십 년 전에 써서 지역신문에 연재되었던 ‘잊혀진 다리’ 그 후속 작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임진강 제 1부를 ‘잊혀진 다리’ 로 하고 2부를 ‘임진강 : 수한이 죽다’ 3부를 ‘임진강: 옥희 누이’
4부를 ‘임진강: 아들의 묘’ 5부를 ‘임진강: 그 여자의 비’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잊혀진 다리는 임진강을 가로지르던 화이트 교에 관한 내용이며,
수한이 죽다는 친구 중 지뢰 사고를 당한 한 인물을 소재로 극화 하였으며,
옥희 누이 역시 선배의 남편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극화하였고,
아들의 묘나 그 여자의 비 역시 그런 방식으로 쓴 단편들이다.
이 소설에 소개되는 내용 중 사고를 보여주는 내용 외에는 극화된 글이라는 것을 밝혀두면서.
A-4용지 10호 글씨로 약 140P정도 되는 적지 않은 양을 썼는데,
사실 이 소설은 처음 구상할 때 장편으로 묶으려는 생각을 했던 내용인데,
막상 쓰기를 시작하면서 그 길이도 길이거니와 하나의 이야기와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문제에 부딪히면서 고민을 해야 했고, 결국은 하나씩 나누어서 쓰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지금 인터넷 카페와 밴드, 그리고 페이스 북에 연재되고 있는 ‘임진강: 수한이 죽다.’가
임진강에 관한 큰 제목의 그 두 번째 소설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일단 이 소설은 이미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므로 끝 회 분까지 소개를 하는 것이 예의이기에 마무리를
지어 드릴 생각이다.
다만 이 ‘수한이 죽다’의 연재가 끝나면 당분간 소설 휴식기를 둘 생각이다.
그 이유는 내가 관계하고 있는 모 문학지에 졸작이지만 매 번 단편소설이 게재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앞으로도 소설을 발표해야 하는데,
나의 글 쓰는 역량의 한계 때문에, 써 둔 글을 아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인 것이다.
물론 문학지에 게재가 되고 나서는 하나하나 소개해 드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으로서 시를 쓰면서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의 양이 적지
않은데, 그 동안 내가 쓴 소설을 보니 장편 2편과(개잡부, 소설 인계동) 단편 30여 편을 썼다.
어떻게 보면 다작을 하는 것인데,
욕심 때문일까? 때로는 작품성도 없는 글들을 마구 집필하는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다.
어쨌든 코로나19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임진강에 관한 단편을 정리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속이 이 코로나19사태가 진정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