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4
그 때 만일 그 교통사고만 아니었다면 나도 지금쯤 남들과 다름없는 직장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랐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 과장급이니 적어도 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그 직장의 대리였을 때 출장 나갔다가 당한 교통사고는 하필이면 왼 팔을 쓸 수 없는 병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때 받은 보상비로 지금 이 지하 방을 전세로 얻었지만 한 팔을 쓰지 못하는 몸으로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퇴직금, 그 돈 역시 얼마 가지 않아 헤프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재활 훈련이라는 것을 통해서 왼팔도 어느 정도 쓰기는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물이 끓는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라면을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찾았지만 계란은 없었다.
김치를 꺼내 놓았다. 이 김치도 지난 번 어머니가 조금 가져다 준 것이다.
라면이 다 익자 냄비 채 들어서 방바닥에 놓고 뚜껑을 연다. 라면 냄새와 뜨거운 김이 솟아오른다.
김치를 라면에 얹어서 후후 불면서 먹는다. 국물이 시원하다. 역시 술을 마신 후의 라면은 맛있다.
빈 냄비를 개수대에 넣고는 자리에 벌러덩 눕는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켠다. 하지만 티브이의 화면과 음향보다는 한 여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삼삼하게 떠오른다. 놀이터에서 본 그 여자의 모습이.
***
늦게 일어난 나는 밥통에 남아있는 밥에 고추장을 넣고 비빈 후 김치를 얹어 먹었다.
생선이라도 한 토막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 형편으로 주머니에 있는 몇 푼을 그렇게 쓸 수는 없겠기에 있는 반찬으로 끼니를 때운다.
낮에 광고지에 있는 주유소 몇 군데를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밥을 먹은 후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게임에 빠져들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인터넷 게임도 사람을 환장 시켜준다.
결코 현찰이 오고가는 놀음은 아닌데도 잃으면 잃는 대로 기분이 상하고,
따면 따는 대로 즐겁기에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 버렸다.
점심 먹는 것조차 잊은 채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긴 점심을 거의 먹지 않는 편이었기에 배고픈 줄도 모르고 지나쳤지만 말이다.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나는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한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넘었다.
밥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놀이터가 생각이 난다.
그 여자가 오늘도 나와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일어나 칫솔질을 한다. 그리고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옷장을 열고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한 참 고민을 하다가 놀이터에 가는 차림이라면 굳이
차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센달을 신었다.
그리고 오른 손에 책을 한권 들었다. 편하게 읽을 만한 전쟁 소설책이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 놀이터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놀이터를 향하여 걷던 나는 눈에 보이는 슈퍼로 들어갔다. 캔 맥주를 하나 산다.
그제야 목적지인 놀이터를 향해 조금은 부지런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놀이터에 들어서는 입구에서 나는 놀이터를 휘 둘러 본다.
그러고 보니 이 놀이터의 공용 주차장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러니까 시에서 공용주차장을 지하로 내려 보내고 그 위에 놀이터를 만든 것이다.
놀이터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이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한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