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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꿈에서라도 5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6.11|조회수17 목록 댓글 0

꿈에서라도 5

 

 

한번 휘둘러보는 내 눈은 정자 밑의 나무 의자에 가서 멈춘다.

어제의 그 여자가 어제의 모습과 같은 자세로 앉아서 역시 어제와 같이

핸드폰의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모르는 척 천천히 걸어서 그 여자의 바로 옆 의자에 앉으며 캔 맥주를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책을 펴서 천천히 읽기 시작하였다. 틈틈이 곁눈질로 그 여자의 행동을 지켜보기도 하고,

틈틈이 고개를 들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참을 그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육이오 전쟁을 그린 소설은 그 내용이 재미있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하는 행동들이 가끔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스스로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렸던 것이다.

나는 소설책을 손에 잡으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오늘을 그렇지가 않았다.

눈으로는 소설을 읽고 있었지만 신경은 다른 곳으로 가 있다. 하지만 관심 있는 척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보기도 어색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로 책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캔 맥주를 따기 위한 행동으로 고개를 들었고

한 손으로 캔 맥주의 뚜껑을 따면서 그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여자가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고개를 그녀에게로 돌리자 얼른 다른 곳으로 눈길을 준다.

하지만 내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그녀의 눈길이 다시 내게로 향했고,

그녀의 눈에서는 어색한 웃음기가 일어난다. 나도 그녀의 눈길을 받으면서 눈으로 인사를 건넨다.

어제 만난 사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말이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고개를 책으로 떨어뜨리고 책에 눈을 꽂는다.

여자는 다시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리는지 가끔 문자가 전송되고 있다는 전자음이 들린다.

그렇게 한 이십 여분이 지났을 무렵 여자에게서 말이 건너온다.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본다.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 , 시간이 있으면…….”

나도 책을 좋아하는데,”

그러세요?”

하지만 지금은 집에 책이 없어서 읽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대여점의 책을 빌려 보기는 싫고…….”

지금 이 여자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대여점의 책은 빌려보기 싫다는 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혹시 책을 빌려주면 읽는다는 말일까? 나는 미친 척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책 좀 빌려 드릴까요?”

여자의 눈이 크게 열린다. 검은 눈동자가 초롱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 많으세요?”

아니, 많지는 않지만 읽을 만 한 책은 몇 권 있습니다.”

그럼,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나는 속으로 야호! 를 외친다. 이럴 수가,

지금 이 여자는 내게 속된 말로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은 적어도 내게 관심이 있다는 말인 것이다.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세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만일 그녀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집에 없으면 서점에 가서 사서라도 빌려 줄 생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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