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7
“예, 오늘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머! 그럼 텔레파시가 통한 거네요.
그렇지 않아도 어디 갔다 오느라고 그제 못 나와서 마음이 쓰였는데, 그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여자가 기분이 좋은지 가지런한 이가 보일 정도로 입을 열고 웃는다.
여자의 입술이 조금 두텁게 보인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한 손을 입으로 가져가 입을 가린다.
그러더니 책을 손으로 집어 들고 겉표지를 연다.
“아! 이 분이 쓰신 소설이구나.”
“아시는 분이세요?”
“아니요. 이 분 이름을 들어서 알아요. 우리나라 소설가 중에 톱으로 인정하시는 분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책을 많이 보시는 모양입니다.”
“그렇지는 않아요. 그저 가끔 심심할 때 보기는 하지만, 거기처럼”
거기까지 말한 여자가 조금 어색함을 느꼈는지 입을 닫는다.
“아! 저는 나 인연입니다.”
“나 인연씨요? 나는 나선생님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해요.”
여자가 조금 전 중단했던 말을 이어서 한다.
나선생님, 듣기가 이상하다. 아마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호칭일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여자에게서, 그것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자에게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다니,
나도 모르게 입이 벌려진다.
“술을 들고 계시는 중이셨네요?”
“아! 예, 책을 읽다가 생각나서”
“술, 좋아하세요?”
“아니요.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한 잔씩 하기는 하지요.”
“그러세요? 어쩜 나하고 똑 같네요. 저도 꼭 필요할 경우에만 조금 마시거든요.”
이게 웬일인가? 여자가 나와 비슷한 취미라니, 이건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내 기분은 지금 날아갈 것 같다.
잘하면 어머니나 형님이나 형수에게 큰 소리 칠 건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이 여섯 권짜리이니 못 만나도 여섯 번 아니 일곱 번은 만나게 된다.
되돌려 받는 횟수까지 말이다. 적어도 그 일곱 번의 만남에서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 여자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일곱 번의 만남 중에 언제라도 기회를 봐서 포옹, 키스, 정도는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만일 이 여자가 결혼 한 여자라면? 아닐 것이다.
이 시간에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여자는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결혼 한 여자라면 이 시간에 가족들을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마음을 굳힌다.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하여 내 여자로 만들 것인가? 사람이 첫 눈에 뿅 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아니 첫 눈에 반한다는 말, 말이다.
여자는 잠시 책을 살펴본다. 그러더니
“처음 만났는데 선뜻 책을 빌려 주시고, 제가 뭐로 보답을 해 드리지요?”
“아니! 보답이라니요? 집에 있는 책을 빌려드리는 것뿐인데.”
“그러지 말고 우리 언제 술 한 잔 해요. 제가 쏠게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물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래도 입가에 웃음이 이는 것 까지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좋지요. 저야 시간이 있는 편이니 아무 때고 말씀하세요.”
“시간이 그렇게 많으세요?”
여자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 헉! 하고 놀랐다. 말을 잘 못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다는 말은 곧 백수를 의미하는 말 아닌가?
이 여자가 나를 백수로 알게 된다면 꽁지가 빠지게 도망갈지도 모른다.
나는 순간 기지를 발휘한다.
거짓말도 때로는 나를 보호하고 내 의도를 감추며 상대에게 나를 좋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사용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