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9
약속한 날 아침. 어젯밤 잠을 설쳤는데도 이른 시간에 잠이 깬 나는 우선 사우나로 달려갔다.
이발을 하고 목욕을 정성껏 한다.
그리고 건식 사우나에서 땀을 한 참이나 흘린 후에 찬 물로 샤워를 하고
휴게실로 나와 캔 맥주를 하나 사서 마신다.
역시 맥주는 땀을 흘리고 나서 마시는 것이 제일 맛있다.
속옷을 산다.
깨끗한 새 옷을 입는 기분은 어릴 적 명절 전날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다 주신
새 옷을 입는 기분만큼이나 좋다. 아니 오늘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사우나에서 나오면서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난다. 향수를 하나 살까 망설이다가 포기한다.
아무리 멋을 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 지나치다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루하다. 인터넷 게임을 해본다. 판판이 진다. 질 수 밖에 없는 것을 나도 안다.
지금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데 게임이 될 리가 만무이다.
영화를 한 편 내려 받아서 본다. 하지만 그것도 별 재미가 없다.
예전 같으면 이 주연 배우의 출연 영화를 보기 위해서 개봉관을 찾아가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하루 종일 몇 번이나 시계를 보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죽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티브이에서는 계속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렇게 시간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그렇게라도 시간은 흘렀고 이제 그 여자를 만나기로 한 시간도 삼십 분 정도 남았다.
나는 2권을 찾아 준비해 놓고 어떤 못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편하게 입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베이지색 면바지에 하얀 색 티를 입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매만져 본다. 이만 하면 되겠다 싶다.
놀이터에서 그 여자를 기다린 지 십여 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반갑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려다가 얼른 손을 내린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잘 지내셨어요?”
여자가 웃으며 인사를 한다.
여자의 말이 내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간다. 시원한 바람이 뻥 뚫린 가슴을 씻고 지나간다.
“잘 지내셨지요?”
“제가 늦었지요? 오늘 일을 서둘렀는데도 조금 늦게 끝나서요.”
“무슨 일인데요?”
“유치원 교사예요.”
유치원? 나는 속으로 반가움이 인다.
유치원 교사라면 아이들은 잘 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들 하나 딸 하나 속으로 셈을 한다.
“좋은 직장이군요.”
“좋기는요. 하긴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즐겁고 좋기는 하지요.”
“그럼요.”
나는 여자의 말에 긍정적인 답을 한다.
“나중에 유치원을 해 볼까 싶어서 미리 경험을 해 보는 거예요.”
유치원? 이게 웬 말이냐? 유치원 원장을 한다면 나는 이사장 정도? 속이 떨려온다.
기분이 묘해진다.
아무리 김칫국물 먼저 마신다고 하지만 이런 김칫국물은 아무리 마셔도 체할 것 같지가 않다.
적당한 중형차를 끌고 다니면서 명함을 척! 내 놓으면 사람들은 아! 이사장님이시군요. 하면서
머리를 숙일 것이다.
교육청도 드나들고, 교육감과 식사도 하고, 하! 하! 잘 하면 잘 나가는 부류에 속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