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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꿈에서라도 12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6.27|조회수14 목록 댓글 0

꿈에서라도 12

 

 

우리 둘은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맥주 집을 나왔다.

나는 통행금지를 없애버린 정부 당국자들을 속으로 욕했다.

나쁜 놈들이라고, 통행금지가 없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전기와 물자들이 낭비되고 있는지,

당시의 당국자들은 그런 것도 계산하지 못한 바보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다음 날 일하러 갈 생각도 없이 밤새도록 퍼 마시고 놀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같은 동방예의지국의 미풍양속으로는 허용하면 안 되는 일인데도 말이다.

 

오늘 같은 날 통행금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골목마다 방범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점포들은 하나둘 불을 끄기 시작하고,

택시들은 마지막 한 탕을 더 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며,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가까운 숙박시설로 들어가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십 사시 사우나도 그렇다.

옛날 같으면 목욕탕은 밤 열시만 되면 손님을 더 받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스물 네 시간 풀가동이다. 만일, 만일 말이다.

오늘 같은 날, 통행금지가 있고 사우나가 없다면 나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여자와 모텔이라고 말하는

그런 장소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통행금지가 없고, 사우나가 있다는 것이 오늘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 즐거우셨어요?”

여자가 팔짱을 끼고 내 팔뚝을 작은 손가락으로 오물락조물락 거리면서 물었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면서 말이다.

! 내가 고개를 조금 돌리고 숙인다면 이 여자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얼굴이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 속으로 붉은 혀가 보인다.

내 속은 다시 콩닥 거리기 시작한다.

그럼요! 오늘 덕분에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도요. 저도 나선생님 덕분에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운다.

타세요.”

여자가 먼저 차에 오르고 내가 뒤이어 오르자 택시는 곧 출발한다.

하긴 같은 방향이니 집 근처에 내려서 헤어지면 될 것이다.

차는 얼마 걸리지 않아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내려놓고 가버린다. 여자는 다시 팔짱을 낀다.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놀이터까지 천천히 걸었다.

 

놀이터는 어두움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로등이 몇 개 있었지만 절전 때문인지 겨우 사람의 형체만 알아 볼 정도의 밝기이다.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거의 히프가 마주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말이다.

나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가볍게 힘을 주어 내 쪽으로 당겼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

이렇게 다소곳한 여자라니,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자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간다. 그러자 여자가 살며시 얼굴을 돌린다.

사일 후에 만나요.”

사일 후라, 삼권을 부탁한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얼굴을 돌려 정면을 보면서

, 사일 후에 다시 만나요.”

 

여자가 일어선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나는 손을 내 밀어 여자의 손을 가볍게 쥐어준다.

내 손 안에서 여자의 손이 꼼지락 거린다. 전기가 팍! ! 하며온다.

여자가 내 손 안에서 자신의 손을 빼더니 돌아선다. 그리고 예의 히프를 흔들면서 내게서 멀어져 간다.

몇 걸음 걷던 여자가 서더니 돌아본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들어 흔들어 준다.

아쉬움 가득 한 표정으로 말이다. 여자가 웃는다. 하얀 이가 보인다. 하지만 붉은 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열심히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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