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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63/ [남해 여행기 1]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8.25|조회수15 목록 댓글 2

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63

 

 

[남해 여행기 1]

16일 오후 1230, 아내와 손자를 태운 차가 조치원을 출발했다.

출발하면서 단골로 가는 마트에 들러서 고기와 술을 산다.

진주의 후배 시인과의 저녁 식사 때문이었는데,

몇 번의 방문에서 받은 대접과 나의 네 번째 시집 기역과 리을 사이에 실린 그의 글 낡음때문에

저녁 대접을 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쉽게는 시내로 나오라 하여 식당에서 대접해도 되겠지만

그러면 오히려 그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고,

편안하게 그의 집 마당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은 삼겹살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이왕 고기를 살 것이면 꽃 등심으로 사자는 의견이었고,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주머니가 아내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기와 술(고기는 꽃 등심으로 2키로, 소주 6병 묶음, 양을 넉넉하게 준비한 것은, 나중에 그들

부부의 오붓한 시간을 만들게 하려는 의도)그리고 조금의 야채를 구입하고 길을 떠났다.

! 아내가 된장에 청양고추를 넣어 볶은 것이 매콤하고 맛이 있어서 그것도 준비했다.

집에 있는 묵은 김치도 몇 포기, 그에게는 밥이나 해 놓으라고 부탁을 했다.

 

네비는 조치원에서 무주까지를 찾았는데,

무주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무주부터 진주까지는 일반도로를 이용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차를 이용하여 여행을 할 때는 가능한 일반도로를 즐긴다.

하지만 조치원에서 금산을 다녀오려면 대전 시내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지루함과 답답함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차라리 무주에서부터 일반 도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무주에서부터 일반도로를 이용해서 내려가는데,

아쉬운 것은 일반 도로도 거의 고속도로 수준으로 개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외국의 몇 나라를 다녀본 경험으로 보아도 우리나라의 도로 수준은 세계적으로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정도이니, 교통이 편리한 것은 자랑할 만 한 일이다.

그러나 나처럼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불편이 되어 준다.

 

그럼에도 틈틈이 옛 신작로 같은 분위기가 드러나는 도로를 달릴 때면 스스로 속도를 늦춘다.

그 풍경이 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했고, 추억을 되살리기에도 적당하기 때문이다.

6-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지은 건물들,

낡아서 곧 무너질 것 같이 보이는 스레트 지붕과 허름한 여닫이 문, 담을 덮을 듯 자리 잡은 잡초들,

양철 지붕을 보면서는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기억했고, 그런 길을 만나면 나는 행복하기만 하다.

 

덕유산을 넘는데, 나는 여행을 하면서도 덕유산을 넘어보기는 처음이다.

그 굽이굽이가 정겹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한 채의 가옥이 반갑고, 흐르는 냇가의 물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이런 분위기를, 느낌을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눈에 가득 담으면서 천천히 그렇게 길을 간다.

고속도로로 가면 세 시간도 안 걸릴 길을 나는 거의 다섯 시간이 걸려서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그의 마당에 놓여있는 원형식탁,

그의 식탁은 오래 된 주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그 위에 상차림을 한다.

그리고 편안하게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한다.

여인들과 손자는 식사 후 자리를 떠나고 우리 둘은 밤 열두시가 되도록 대화를 나눈다.

삶과 문학과 문단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꺼내놓고 안주를 삼는다.

시골은 새벽에 일을 나가서 해가 뜨겁기 전에 들어온다는데, 우리는 그조차 무시한 시간을 붙들고 있다.

 

일어설 때 빈 소주병 네 개가 곁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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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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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嘉南 임애월 | 작성시간 20.08.26 아직도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 아름답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고정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8.27 살아가는 맛이지요. 술과 문학..... 궁합이 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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