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63
[남해 여행기 2]
이튿날 새벽 5시 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마당이 시끄러워진다.
그의 집 마당 건너편에 재실이 있는데 그 재실의 지붕 한 쪽이 이번 홍수에 조금 무너진 것을
오늘 수리한다고 한다. 덕분에 아내와 손자도 일어났고, 간단한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늘 하던 습관대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그리고 길을 나서는데 무엇인가 한 보따리
싸서 건네준다. 아내는 친정에 왔다 가는 기분이 든다며 좋아한다.
역시 길은 일반도로, 하지만 외곽도로가 잘 되어있어서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그렇게 삼천포 대교를 건너 남해로 들어선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죽방렴 전망대. 죽방렴은 남해로 들어가는 초입이기에 쉽게 찾아 간다.
멀지 않은 곳의 바다 물 위에 촘촘하게 서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옛 어른들의 지혜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자연 적응에 관한 지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존재들이다.
죽방렴을 한 동안 내려다보며 생각해 보았다.
옛 어른들은 저렇게 많은 나무를 어떻게 심어(?)놓으셨을까?
삽을 들고 잠수해서 팠을까? 나무의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박았을까?
지금 시대라면 온통 공사에 필요한 좋은 기구들이 많으니 쉽게 하겠지만,
결론은 썰물이었다. 물이 나갔을 때 어른들은 물들어오기 전에 부지런히 나무를 박으셨을 것이다.
문득 인천 시도의 바다에 심겨있던 나무들이 생각났다.
그곳은 일 열로 쭉 늘어뜨렸고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았는데,
이곳 죽방렴은 어항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곧 들어오면 나가기가 쉽지 않은 구조물인 것이다.
죽방멸치가 유명하다는데, 멸치 쌈밥도 이곳 토속 음식일 것 같고,
올라가기 전에 멸치쌈밥을 먹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운다. 결국 먹지는 못했지만,
죽방렴에서 어느 정도 쉬면서 본 후에 우리는 이동복 떡집으로 이동했다,
남해의 유명한 떡집이라는 말에, 그곳에 들어가 보니 먹음직스러운 떡이 가득하다.
전부 택배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나는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내 주머니의 사정,
이번 여행에 가장 많은 수고를 베풀어 준 지인을 위하여 한 박스 주문한다.
급냉 해서 택배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곳을 떠나 남해 군청으로 갔다.
저녁 식사의 식당을 알아보아 준 분에게 인사라도 하기 위해서였는데,
작년에 퇴직 했다는 말만 듣고, 남해 수산시장으로 갔지만 차를 댈 곳도 없고 주차장은 만 차이고, 포기했다.
하지만 이 동선은 점심식사를 위한 장소로 가는 길에 있는 곳이기에 적당한 시간을 맞추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남해 읍내를 벗어나 멀지 않은 길을 가니 유턴 형식으로 차를 돌리고 우회전하여 골목으로 접어들게 된 길,
그 길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급경사는 아니었고, 그리 깊은 산속은 아니었기에 곧 찾던 곳이 보인다.
주변에 건물이 없는데 아담한 정원이 잘 가꾸어진 가정집 한 채,
이곳에 오기 전에 인터넷을 살펴보았더니 여행자들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소개되어 있는 곳이다.
남해 피자피네라는 이름으로, 지난 일요일(23일) 소개한 詩 ‘그 골짜기에’의 소재가 되어준 집이다.
지인의 여동생 부부가 하는 피자집. 생소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이 크다.
산골짜기에 피자집이라니, 그것도 화덕구이, 배달도 되지 않는 곳, 차가 없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발상의 전환, 중년 부부의 판단과 실행이 이렇게 아담한 정원이 있는 휴식의 장소가 되어준 것이다.
물론 인터넷 등에 나름의 유명세를 일구어놓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마음 껏,
계산 생각 말고 드시면 된다는 지인의 말이 기억났지만 결국 선택한 음식은 손자가 원하는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음료였다. 나중에 지인은 “더 맛있고 좋은 피자가 있는데”, 라며 아쉬워한다.
내가 그 부부께 전한 것은 시집 한 권. 이제 독일마을을 지나 숙소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