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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어느 하루 (제 3회)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09.15|조회수11 목록 댓글 0

어느 하루 (3)

 

 

2

그는 커피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아서 커피 향을 코로 들여 마신다. 벌써 사십 년 가까이 해 오던 습관인데,

커피포드에서 커피 잔으로 물을 부을 때 커피가 녹으면서 내는 그 향을 그는 매우 즐겨했고,

첫 모금을 마시기 전에 코로 들이키는 그 향을 좋아했던 것이다.

커피 향을 맡으며 컴퓨터 전원을 켠다. 그리고 커피가 약간 식을 동안 그에게 온 여러 메일을 살펴본다.

그 후에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그는 문서함을 열어 그가 쓰고 있던, 또는 청탁받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날도 그는 매일 습관처럼 하는 방식대로 커피를 책상 위에 놓고 그 향을 맞은 후 컴퓨터 전원을 넣다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왼쪽 얼굴을 뜨겁게 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일어나 커튼을 치기 위해 창으로

다가서서 커튼을 잡으며 창 밑으로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본다.

‘?’

아파트 주차장에 노점들의 천막이 쳐있고, 장사꾼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오늘이 장날인가?’

그는 커튼 치는 것을 잊고 돌아서서 책상 달력을 본다. 달력의 요일은 목요일이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의 정기 장날은 월요일인데,

혹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장날인가?”

하고 아내를 보며 묻는다.

아니, 오늘 민속장터 들어오는 날인데, 게시판에서 못 봤어요?”

그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보았던 장날의 기분을 기억해본다.

물건은 시내의 매장들보다 조잡하게 보이지만 가격은 별로 싸다고 느끼지 못한,

더구나 민속장터가 열리는 날 먹었던 술과 안주는 시내의 식당보다 가격은 비슷하면서도 맛과 정성과

차림이 확실하게 차이가 났고, 그 후로는 아파트에 서는 장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문서함을 열려고 했지만 마음이 아파트 주차장에 가있었고,

따뜻한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싶다는 욕구가 일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의 습관적 일상에 대한 일탈을 몸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조금 서둘러 커피를 마신다.

아직 마실 만큼 식지 않은 커피는 입 안으로 뜨겁게 담기고 식도를 내려가면서 따뜻해 졌다.

 

 

식사 안하고 어디가요?”

아내는 그가 커피를 다 마시고 윗옷을 찾아 몸에 걸치는 것을 보면서 물었다.

아내의 판단으로는 아침도 먹지 않고 밖에 나갈 계획이 없는 남편이 윗옷을 걸치자 의무감이 아니더라도

궁금함으로 질문 할 수 있는 말이다.

요기 잠깐 한 바퀴 돌고 올게

그는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고 집을 나섰다.

 

열한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도로는 한산했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몇 대 되지 않았고 인도를 걷는 사람도 몇 되지 않았다.

하긴 아침 출근 시간도 지났고 학생들 등교 시간도 지난 지 한 참이나 되었으며

가장 늦게 등원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도로를 점령하는

젊은 엄마들도 자식을 등원시킨 후 자신들의 일상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니 당연히 도로는 한산할 수밖에

없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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