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제 4회)
아파트 주변은 꽃들이 자기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고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덥다고 느낄 만큼
햇살도 좋은 날씨였다. 그는 주차장에 들어서 있는 매장들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기며 담배를 한 가피 꺼내
입에 물고 천천히 피운다. 그리고 이제야 봄을 느낀다는 기분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서 공원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적당한 걸음으로 걷는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한 정도였기에
그는 가끔 산책 삼아 걷는 공원이었다. 담배는 공원에 들어서기 전에 다 피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원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작은 습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습관 은 아침에 일어나면 블랙커피를 머그잔으로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공원이나 또는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어떤 일들,
즉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거나 영화를 보거나 회의에 참석하거나 이런 것들의 행동을 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작은 습관들은 또 있다.
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친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이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온 후 몇 년째 이 신호등의 신호를 지키는 버스를 본 기억이 없었다.
하긴 그의 생각에도 버스가 신호를 지킬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뿐더러 그들도 신호를 지키면서 횡단하지 않았고
이 지역에서 음주 단속이라든가 신호 단속을 하기 위해 배치되는 경찰도 없었고,
그 흔한 신호등 위에 달아놓기 시작한 속도 및 신호위반 단속 카메라도 없는 지역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가 보는 경우는 하루에 한 두 차례 횡단보도를 건널 때뿐이니 그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 다니는
차량들은 신호를 철저히 지키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차량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 한 후에 걸음을
조금 빨리해서 도로를 횡단했고 피우던 담배는 버스 승강장 옆에 있는 재떨이에 던져 넣었다.
곧 공원에 들어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원도 한산했다. 하긴 시간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근 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야 말 할 것도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 식사 전이나 또는 아침 식사 후
잠시 산책이나 걷는 것이나 뛰는 것으로 운동을 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법이니 그가 공원에 들어선 시간과는
일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멀리 운동기구에 몸을 의지하고 움직이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이 더러
눈에 띤다.
그들은 대부분 나이가 든 노인 축에 드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오후의 시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책이나 읽을까?
아니면 시장 구경이라도 가볼까? 시장 안의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에 소주나 한 잔 할까?
가까운 친구나 불러내어 바람이나 쐬러 가자할까? 차라리 인사동이나 다녀올까?
하지만 그의 생각이 그럴 뿐 마음이 동하지는 않는다.
귀찮다는 생각이 그의 이런 계획들을 짓눌러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공원을 반이나 돌았을까? 그의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이 울어댄다.
딱히 전화 올 만한 곳도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폰을 꺼낸다.
폰이 소리를 내며 울리는 진동이 그의 손바닥을 자극한다. 그 울림이 묘하게 그의 몸을 긴장하게 한다.
아내의 전화였다. 꼭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는 아내의 전화에 그는 작은 긴장을 한다.
그의 아내에게 전화 습관이랄 것은 없지만 그가 밖으로 나오면 아내는 아주, 정말 아주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하든 전화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아내는 변명삼아 말을 하지만
속내는 전화비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월 약정액도 가장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어떤 달에는 자신의 전화를 이번 달에는 더 이상 쓸 수 없으니 당신이 알아서 전화를 하라고
하던가 하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