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제 7회)
계산을 하고 닭 봉지를 들고 그는 Y슈퍼 밖으로 나왔다. 이제 조금 부지런히 걸을 생각이다.
집까지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그리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뒷머리가 조금 긴장을 한다.
꼭 누가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포장마차를 본다.
여자는 고개를 조금 숙인 체 떡볶이의 양념을 넣고 주걱으로 휘휘 젖는 중이었다.
조금 힘을 주었는지 여자의 팔목에 힘줄이 돋아나있었고 여자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누구의 아내일까? 아니면 누구의 아내였을까?
여자의 목선으로 보아서는 처음부터 포장마차를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어쩌면 넉넉하게 품위를 지킬 만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의 사업이 무너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으로 내 쫓긴 여자일 수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가난한 여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 여자의 목선에 반했던 남자가 여자의 목선을 차지한 후에 실증을 느껴서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목선의 아름다움에 비해 여자의 성격이나 생활 태도가 여성스럽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목선으로 치자면 그 여자는 결코 포장마차에서 순대나 떡볶이를 팔 존재는 아닌 것이다.
신호가 바뀌고 그는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여자의 목선도 천천히 그의 생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4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그가 닭이 들어있는 봉지를 아내에게 건네주자 아내는 만족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통닭이 먹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내가 제일 큰 식용유 페트병을 몇 개 사 들이는
것이 기억났다. 처음에는 세일하는 식용유라서 미리 몇 개 사놓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가정의 부인들도 그렇겠지만 아내는 세일이라는 말에 민감한 편이었다.
언제 쓰거나 먹게 될지는 몰라도 아파트 입구나 현관에 세일 안내장이 붙어 있으면 그것들 떼어
거실로 들어와서 하나하나 살펴보곤 지금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싸다고 판단되면 어김없이 사 들이곤
했던 것이다. 어떨 때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폐기 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우유 같은 것은 하루 이틀 정도 지나도 개의치 않고 마셨으며
다른 반찬 종류도 끓이거나 익히면 된다면서 굳이 먹어 치우곤 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아들이 우유를 마시려고 냉장고에서 꺼내 보고는 날자가 지났다고 제 어미에게 꾸지람 아닌
잔소리를 하고 제 손으로 개수대에 쏟아 버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산 식용유는 바로 이 닭을 튀기기 위해서 산 것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봉지 닭을 받아 들고 주방으로 가더니 곧 그 중 한 마리를 꺼내 손질을 시작했다.
이미 잘 손질되어 포장된 닭이었지만 아내는 정성껏 닭의 기름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기름기는 몸에 좋지 않다는 아내의 판단은 자신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데 충분했던 것이다.
“저녁에 어디 안 나가지요?”
아내의 말은 곧 지금 손질하는 닭은 당신을 위해 삼계탕을 만들 거예요. 하는 말의 동의어였다.
그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식탁 위에 눈길을 주었다.
식탁 위에는 인삼과 황기 그리고 까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밤과 대추가 있었다.
분명 삼계탕의 재료들인 것이다. 그는 아내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했다. 계획은 없었다.
혹 누가 술 한 잔 하자고 불러내지 않는다면 그는 밖으로 나갈 생각도 없었다.
“응.”
그는 단 답으로 대답을 해 주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