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제 8회)
방은 언제나 그가 어지럽혀 놓은 그대로였다.
하긴 그가 해 놓은 것을 누가 손이라도 대면 그는 짜증을 내곤 했기 때문에 아내이든 아들이든
그의 방을 손대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가 청소할 때도 자신이 해 놓은 그대로 청소를 할 뿐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보던 책을 집어 들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이름 있는 소설가가 쓴 소설이었다.
그가 쓴 소설은 몇 편이 영화로 제작되었고 그런 영화 중에 제법 손님을 끌어들인 영화도 있었다.
그의 소설은 한 은행원의 며칠 동안 했던 활동을 쓴 내용이었는데,
자신을 또 다른 자신이 관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보내는 며칠을 쓴 것이었다.
하긴 그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도 어느 별에서 어느 누가 긴 꿈을 꾸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죽음에 이르면 그 어느 별의 또 다른 존재가 ‘이제 일어났는가? 이번에는 잠을 길게 자더군. 꿈까지
꾸면서 말이야. 좋지 않은 꿈이라도 꾼 모양이지?’ 라고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그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 별에서는 몇 시간의 숙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어느 안마 시술소에 들어간 내용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인공은 조금 어두운 실내에서 여자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여자의 부드러운 손길을 기분 좋게 느끼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시술소의 여자가 주인공에게 물었다. ‘조금 더 하시겠어요?’
이 여자의 질문은 지금까지 한 안마 외에 또 다른 서비스도 준비되어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만일 주인공이 그러라고 하면 그 여자는 온 몸으로 주인공의 몸을 정복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만하면 되었다고 말을 했고 여자는 인사를 한 후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데 주인공이
여자의 뒷모습에서 목선을 보았고 그 여자의 목선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욕심이 그의 몸 어느 곳에서 불숙
솟아난다는 내용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소설의 내용에서 목선이 나타나자 책을 접어놓고 눈을 감았다.
그 사거리 포장마차 여자의 목선이 눈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그 목선을 보고 싶었다.
일어나 밖으로 나갈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핑계 거리가 없었다.
하긴 아파트에서 그 곳까지의 거리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궁금증이 시작되자 마음은 그 포장마차로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 그 여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긴 포장마차의 판매 종류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으니 순대 아니면 떡볶이 그도 아니면 튀김이나 김밥
또는 토스트를 팔고 있거나 손님이 없으면 작은 의자에 앉아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목선의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여자는 팝송이나 샹송을 듣거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밖으로 나갈 만 한 명분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선다.
주방에서 끓는 삼계탕 냄새가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어디 가요?”
“어, 소주 한 병 사러”
그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 여자의 포장마차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포장마차는 붐비고 있었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Y슈퍼에서 저녁 찬 거리를 사서 나오는 여자들일 것이다.
여자들의 뒷모습 때문에 여자의 모습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일 뿐 목선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Y슈퍼에 들어가서 소주 여섯 병 묶음 하나를 사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