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제 9회)
그가 술을 들고 포장마차 가까이에 왔을 때는 손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여자의 목선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구가 인다.
그러려면 적어도 순대 일 인분을 먹거나 어묵 두 개는 먹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잠깐 동안 아내가 정성껏 끓여 내는 삼계탕을 생각한다.
아내를 즐거워하게 하려면 아내의 눈에 그가 먹는 삼계탕이 맛있게 보여야 할 것이기에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여자의 목선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구가 삼계탕과 아내의 표정을 눌러버린다.
‘어묵 두 개만 먹고 가자. 그 정도로는 삼계탕 한 그릇 먹는데 지장 없을 거야.’
그가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한 걸음 포장마차로 옮기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카드 한 장이었다.
‘아차! 현찰을......’
그는 주머니에 현찰이 없다는 것에 실망한다.
그러면서 포장마차를 보니 마차 중간에 서 있는 여자의 머리 위,
곧 마차 중간에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카드 환영’ 이라는 빨간 글씨였다.
하지만 그는 카드로 어묵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버지! 요즘은요. 천 원짜리도 카드로 사고 그래요.’
언젠가 그가 아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캔 커피가 생각나서 아들에게 현찰을 달라고 했었다.
그에게는 그날따라 카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현찰 이 천원을 말하자 아들은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하긴 요즘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은 당연한 듯 그렇게 카드를 사용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 때문에 아내에게 구닥다리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여보! 카드로 계산해요.”
시장에서 몇 천 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그가 현찰을 꺼내자 아내가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만원을 넘지 않는 물건을 살 때는 현찰을 사용하는 쪽이었다.
“왜? 이런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그것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카드를 써서 수수료를 내게 하나!”
그가 그렇게 말하고 현찰을 내면 아내는 꼭 아들 사업자 번호로 영수증을 끊는다.
그것은 곧 아들의 사업에 십 원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그는 여자의 목선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구를 현찰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포기하고 몸을 돌려
신호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시 그 여자의 목선을 본 것은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며 잠깐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아주 잠깐 동안 여자가 떡볶이 판을 국자로 휘젓다가 떡이 모자라는지 떡 봉지를 꺼내기 위해 허리를
굽혔을 때였다. 아주 짧은 동안이었지만 여자의 목선은 곱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여자는 떡 봉지를 꺼내 떡을 하나하나씩 떼어 떡볶이 철판에 넣고 있었다.
그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들어왔으므로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건너기 시작했다.
그가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그가 티브이를 보면서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리고 있었다.
상이라야 김치와 총각김치뿐이었지만 삼계탕을 먹는 데는 그것이면 족한 반찬이다.
빈 그릇을 갖다 놓는다. 뼈를 놓을 그릇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소금 종지를 놓고서 그가 자리에 앉자 곧 삼계탕이 가득 담긴 뚝배기를 상 위에 올려놓는다.
“맛있게 드세요.”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