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74
[사십 여 일간의 식사]
사실 아내의 입원은 글로 이야기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 이 글을 보시는 지인들이 걱정할까 하는 부담스러움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늦게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이제는 그 내용을 글로 소개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아내가 입원해 있는 것을 아는 몇 지인은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미안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아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이것은 만일 내가 사십대이거나 오십대였더라면 쓰지 않았을 것인데,
육십 대가 되고 나니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우선 아내가 이번에 청주, 안산 등으로 치료를 위해 입원한 기간을 합치면 약 사십 일 정도라는 것을 말씀
드린다. 즉 연속 입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내가 입원한 후 처음 먹은 것은 부대찌개이다,
요즘은 문득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날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내에게 말하면 자신이 해 준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룬다.
음식은 먹고 싶을 때에 먹어야 제 맛인데, 아내는 집에서 해 먹어도 되는 음식을 굳이 식당에서 비용을
쓰면서 먹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 없을 때 먹고 싶었던 것을 다 사먹어야지,
하는 궁색한 궁리를 해본다.
삼인 분이 9,900원, 특은 12,900원인데 9,900원 짜리를 샀다. 그런데 처음 한 끼는 맛있게 먹었는데,
남은 음식을 다음에 먹으려고 하니 그 맛과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이다. 남아있던 라면 사리는 퉁퉁,
그리고 음식이란 식혔다가 다시 끓이면 분명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두 번째 먹을 때는 전혀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콩나물국이나 계란탕, 그리고 김치찌개, 꽁치 통조림 찜, 비빔국수, 등은
내가 혼자 잘 해 먹는 음식이었고, 두부 찍개도 잘 해먹는 음식이며, 아내도 그 음식은 괜찮다고 하는 것인데
이번에 해보니 예전 내가 만들었던 그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내가 해서 내가 먹어봐도 맛이 없다.
그렇다고 음식을 버릴 수는 없고, 어릴 적 부모님께 배운 것 중 하나는 음식을 버리면 죄라. 는 것이었다.
맛이 없는 것을 어떡하든 먹어야 하겠기에, 다른 것을 첨가한다.
고추장을 넣기도 하고, 뭐 나름 방식을 사용해서 다른 맛을 내도록 해 보지만 맛없다고 느낀 음식이 다시
맛있어 질리는 없는 법, 그러나 억지로 먹는다. 문제는 손이 커서인지, 음식을 해도 많이 하기 때문에 몇
번을 먹어야 하는 고충이 뒤따르고 만다. 밥도 역시 그렇다 한 번에 며칠 먹을 양을 해 놓으니......
마트에서 몇 가지 국을 샀다. 김치찌개, 육개장, 뭐 이런 것들인데, 먹으면서 후회했다.
내가 한 것 보다 더 내 입에 맞지 않아서이다. 물론 그 음식과 그 회사를 나쁘게 말할 생각은 없다.
그들 나름대로는 그 가격에 그 정도의 양과 맛이면 될 것이라는 결정을 하고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씩은 시장 먹자골목에서 순댓국을 먹는다. 오늘도 먹으면서 생각을 한다.
내 입에 역시 순댓국인가? 아니면 다른 음식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혼자 식사를 하면서 술이라도 한 잔 하려면 결국 순댓국, 육개장, 뭐 이런 음식밖에는
답이 없다. 회를 먹기도 갈비를 먹기도 혼자서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집에 아내가 해 놓은 반찬이 떨어지고 있다. 고민이다.
시장에서 몇 가지 반찬을 사다가 먹어야 할지, 아니면 대충 집에 있는 것으로 적당히 끓이고 지지고 볶아서
먹어야 할지, 눈에 보이는 햄, 라면, 계란, 아무래도 이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
오산 같으면 가까운 지인을 불러서라도 한 끼씩 해결할 텐데......
아내의 퇴원은 아직 며칠이 남았다. 그 때까지 어떡하든 견뎌야지. (이 글은 지난 6월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