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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필 산문

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75/ [택배 노동자]

작성자고정현|작성시간20.11.03|조회수7 목록 댓글 0

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75

 

 

[택배 노동자]

어제 낮, 아들 학원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파트 16층에 살고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당연한 일,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더니 16층에 서고, 문이 열린다.

그리고 택배 직원이 내리고 내가 타서 버튼을 누르려는데 잠깐만요!”하고 기사가 큰 소리로 말하기에

대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 주었다.

 

기사는 물건을 앞집 현관 문 앞에 내려놓더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를 탄다.

내려가세요?” 하고 물으니 라고 답을 하면서 폰을 작동한다. “사진도 찍으시네요.”하고 물으니

,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아요.”하며 답을 하는데 숨소리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선수가 최선을 다하여 결승선에 도착 한 후 숨 고르기를 하는 것 같이 들린다.

힘드시겠어요?” 하니 그렇지요 뭐하는데 그 소리가 쓸쓸하게 들린다.

 

며칠 전 택배 기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고, 올 해만 열 분의 생명이 스러졌다는데,

아침 뉴스에서 또 한 분의 기사가 사망했다는(그것도 자살) 소식을 들은 터라 그의 숨 고르는 소리가 편하게

들리지 않는다. 일층에서 내려서 부지런히 걷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혹 내 집안의 누군가도 이 일에 종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고 보니 오산에 살 때 부부가 함께 택배를 하는 분들과 얼굴이 익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부부가 함께 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작업량이라고 했었다.

우리 아파트에 오는 시간이 오후 5시 경이었는데, 열린 짐칸에 보이는 물량이 반도 더 되어 보이곤 했었다.

 

지난 번 추석 앞두고 택배 기사들의 작업 거부 운동에 정부는 만 명의 분류 작업자를 충원하겠다고 약속하여

대란을 막은 일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허무, 그 자체였다. 거의 충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요 며칠 동안 일어난 택배기사의 사망은 추석 연휴의 과도한 작업에 대한 결과가 지금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왜 분류 자와 배달 자를 구별하지 않는 것일까? 대체로 기사는 운전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다.

버스도 택시도, 아니 일반인들의 일상에서도 운전하는 사람에게 다른 힘든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데,

유독 택배에서만은 기사가 분류도 하고 배달도 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사업자 입장에서는 최대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정치와 사회 종교문제에 관한,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때로는 문인들이 이렇게 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은 지금의 사회가, 정치가,

아니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모든 분야들,(, 경제, 사회, 정치)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동안 축구의 손흥민, 한류를 일으킨 방탄소년단, 그리고 미스터 트롯 소식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뿐, 그 외에는 웃을 만한 사회적 문제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19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말이다.

 

급할 때는 간이라도 꺼내 줄 것 같은 약속을 하고, 불이 꺼지면 잔불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약속을 덮어

버리는 일들이 어디 이 일 뿐이겠는가? 마음이 아픈 시간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그 택배기사를 만나지 않았으면 논리적으로 생각할 뿐이었을 텐데,

막상 눈앞에서 보니 감정까지 격해지는 씁쓸한 날이 되어 버렸다.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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