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76
[잔잔한 감동]
며칠 전의 일이다. 아들 학원이 있는 세종 시,
어느 건물을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 쪽에 서 있다가 만난 감동을 써본다.
대부분의 빌딩의 입구는 대체로 양쪽으로 여닫는 문으로 되어있다.
이 빌딩도 첫 번째 문은 그렇게 되어있고, 두 번째 문은 자동으로 반이 여닫히는 문으로 되어있는데,
안 쪽의 자동문은 늘 열려 있으나 첫 번째 문은 한쪽을 열어놓은 채 나머지 한쪽은 잠겨 있어서
두 사람이 함께 지나거나 비껴갈 수 없는 구조이다. 곧 한 사람씩 드나들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 빌딩에 볼 일이 있어 첫 번째 문을 들어서려고 하는데 안 쪽 자동화 문을 지나는 두 여성,
이미 그들이 안쪽 문을 들어섰으니 내가 들어서면 첫 번째 문과 두 번째 문 사이에서 부딪치게 되어있고,
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다.
그녀들이 불편해 하지 않고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두 여성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그렇다고 일행은 아닌, 그저 걷다보니 그 곳을 앞뒤로 걷게 된 여성들로 느껴졌고,
앞에 선 여성은 고개를 숙이고 폰을 들여다보며 걷는데, 아무래도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뒤를 따르는 여성은 오른 손에 폰은 들고 있지만 들여다 보지는 않는데,
내 생각으로는 폰을 들여다보다가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하므로 잠시 멈추고 걷는 것처럼 보인다.
앞의 여성이 내 앞을 지나가고,
그런데 그 뒤에 오던 여성이 나를 보더니 한 곁으로 비켜서면서 한 손을 허리까지 들었다가 옆으로 내려
방향을 가리키며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한다. 허리도 조금 숙이면서......
그런데 그 자세가 내 눈에 들어오면서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몇 가지의 어휘들이 머릿속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양보, 배려, 예의, 공경, 겸손, 이런 단어들인데, 내가 지난 후 여성이 지나가고,
내가 돌아보았을 때는 여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 참 묘하다.
그 여성이 참 곱다는, 어여쁘다는, 뭐 그런 생각들이 가득하게 차는 것이다.
어느 집 규수일까? 아마 내 어릴 적 시절 같았다면 어른들은 그런 생각부터 하셨을지 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아마 그 여성은 가정교육을 잘 받은 여성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부모가
궁금해지고, 그 부모가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저런 딸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욕심까지......
물론 그 여성과 같이 양보를 잘 하는 젊은이들은 많다.
예전처럼 그렇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생활에는 어른 공경이라는 방식이 몸에 배어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여성처럼 그런 자세로 양보하는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참 묘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세는 결코 여성 스스로가 알아서 한다, 기 보다는 그녀의 부모가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몸으로
보여준 교육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교육이란 논리 이전에 삶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실제적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리 책상머리에서 어른공경이라는 내용을 가르친다 해도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공경, 배려, 양보 같은 내용들이 몸에 배지 않으면 그런 자세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그날 남은 시간을 그 여성 때문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그 여성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