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77
[느림이 주는 유익]
참, 오랜만의 나들이라고 할까?
코로나19는 나의 일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중단시켜 놓았는데, 바로 여행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여러 번 지방을 다녀왔을 텐데, 다들 아는 것처럼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고 연기되고,
그래서 여럿이 함께 모인다는 것이 어렵기에 그만큼 나들이도 어렵게 된 것인데,
어제(6월 6일) 오랜만의 모임이 서울 사당 동에서 있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 나서서 아내의 병원에 들러 점심을 함께 먹고, 그리고 시간에 맞춰 사당 동으로 갔다.
예전의 모임 보다는 눈에 띄게 적어진 참석자, 그래도 6개 월 여만의 만남이 서로를 반갑게 해 준다.
입구에 들어서자 온도를 재고, 손 소독제를 바르고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고,
간단한 창작 강의를 듣고 서로의 작품을 낭독하면서 합평하고,
두 달에 한 번씩 있었던 모임이 6 개월 만에 열렸는데, 처음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참석자들의 열의가 그 시간을 즐겁게 해 준다.
모임이 끝나면 함께 식사를 나누곤 했는데,
오늘은 식사 모임은 없이 떡을 한 덩이씩 나누어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눈이 맞는 몇 사람이 헤어지면서 따로 뭉친다. 그리고 그들은 늘 가던 식당으로 간다.
역시 한 잔 나누는 것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오랜만의 잔 부딪침이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때문에 생각보다 더 많이 마신 술.
그들과 헤어져서 전철로 수원 역으로 간다.
폰으로 열어본 열차 시간표, 내가 수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다. 오후 8시 46분 열차가 있다.
그 다음 열차는 오후 10시, 1시간 15분 정도의 시간 차이가 난다.
그리고 내가 수원 역에 도착 가능한 시간은 오후 8시 35분 정도,
전철에서 내려 부지런히 가면 충분히 8시 46분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서두를 것인가? 여유를 누릴 것인가? 그런데 내 생각에 핑계 거리가 먼저 자리를 잡는다.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것, 사당에서 피웠으니 수원서 피우지 않으면 조치원까지는 금연이다.
결국 조금의 느림을 택하기로 하고, 수원 역에서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역에 올라가 표를 끊은 시간이 오후 8시 48분.
표를 예매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역 건너편의 알라딘 중고 서점으로 간다.
작년 이사하기 전 까지는 한 달에 한 번 이발과 순댓국과 중고 책을 위해 들렀었는데,
서점에 들어가서 천천히 책을 살펴보고 읽어보고 하던 중. 내 눈을 끄는 책 한 권, 반가웠다.
한 질 6권으로 되어있는 책 중 5권까지는 내게 있었는데 그동안 마지막 6권을 채우고 싶어 찾던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누가 볼 새라 얼른 꺼내 든다.
그리고 다른 책 두 권을 더 골라서 구입한다.
하긴 전에 조정래님의 “정글 만리”도 이런 방식으로 한 권씩 구입해서 채웠는데,
중고서점이 좋은 이유는 뻔하다,
급하게 구입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읽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책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조치원에 이사 와서 찾아보았지만 없었고, 결국 대전에서 만난 알라딘 중고 서점,
이제 대전의 모임이나 가는 길에 한 번씩 들러볼 생각이다.
한 시간의 게으름, 아니 여유로움이 모자랐던 것을 채우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랬다 어느 분의 말처럼 느리게 가면 보이는 것들......
그래서 여행은 느리게, 가난하게 하는 것인가 보다. (2020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