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88
[기쁨이 되어준 선물]
2021년 구정을 앞둔 어느 날, 아들 학원에 있는데 문자가 하나 왔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였다.
저녁에 집에 와서 택배를 열어보니 떡국 떡 한 봉지, 이번 명절에 아들들과 손자 등 함께 아침상으로는 남을 만큼의
양이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곳에서 보낸 것이다.
박스에 적혀 있는 010 전화번호, 다음 날 오전에 전화를 했더니 경남 하동의 어느 떡집 여사장이 받는다.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누가 보냈는지 알려주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산에 계신 지인의 이름을
알려준다. 부산에 내려오면 꼭 연락하라고, 연락하면 자갈치 시장에서 선지국수를 대접하겠노라고 하던
(선지국수는 그곳에 여행 갔다가 새롭게 느껴져서 먹어본 음식이다) 그 여성분이시다.
모 단톡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몇 번의 통화를 했던 분.
떡집 여사장은 '그 떡은 새싹을 첨가한 것'이라는 말, 생각해 보니 떡이라면 부산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맛있게 하는 떡집도 많을 텐데, 굳이 하동의 떡집에 주문해서 보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하다.
내게 좋은 떡으로 명철 아침을 맞이하게 하려는 그 분의 마음 씀이 감동이다. 명절 아침에 아들 손자에게 큰 소리 칠 건수(?)가 생겼다.
전화를 드렸다. 그 분이 놀란다. 전화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볼일을 보기 위해 외출중이라는 말에 간단한 인사를 전하고 끊으면서 글을 통해 주변에 알게 된 지인들,
여행 중에 만난 분들과의 교제가 이런저런 사연을 만들어 주고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준다는 것에 기쁨과 보람을
얻으면서, 이 글도 쓰는 것이다.
누가 내게 말했다. ‘코로나가 극성이라도 혼자 여행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조금 잠잠해 지면 부산부터 가보려 한다. 다대포 해변이나 광안리 해변에서 깡통 맥주 하나 따서 마시고
싶고, 자갈치 시장과 깡통 시장을 누벼보고 싶어서이다.
그러고 보니 참 여러분들이 내게 선물을 보내주었었다,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출판 기념회를 하던 날, 어느 분이 고가의 만년필에 내 이니셜을 새겨서 주셨는데,
만년필이 습관 되지 않아서 서재에 모셔(?)두고 있고, 제피 나물을 즐긴다고 했더니 보내주시고,
중국의 해발 2천 미터 산에서 따서 덕은 허브 차, 치약과 비누 그리고 영양제를 보내주신 분,
절기 마다 전국의 토속주를 찾아서 보내주시는 분, 기장의 멸치 젓갈, 과일,
이런저런 선물은 다 기록할 수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이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내게 주는 추억들인 것이다.
가장 기억나는 선물이라면 박카스 한 병이다.
군에서 제대한 후 복학하고, 야학을 이 년간 했다. 흔히 지방에서 공업도시로 올라와 직장 생활하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이었는데, 내가 그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
어느 여학생(여학생이지만 나이가 20은 넘었다)이 허리 뒤로 감추고 내게 와서 부끄럽게 내밀던 박카스 한 병,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박카스 한 병은 2-30원 정도였는데,
어쩌면 내가 “우리”라는 말에 빠져 있는 것도,
그래서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것도,
그래서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한 것도, 바라기는 내 자식들이 나를 장례하기 전에 시신 기증을 해 주기 바라는 것도,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과 사연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명절 아침은 훈훈한 마음으로 떡국을 끓여 상차림을 할 것이다.
자식 손자에게 자랑하면서 말이다. (2021년 2월 5일)
*여행은 1. 시간 있을 때 떠나라. 2. 가용 가능한 돈으로만 하라. 3. 가장 싸고 느리게 하라. 그러면 만 원으로도
가능하고, 어제 갔던 곳에서도 또 다른 글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