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96
[글이 맺어주는 인연2]
다른 한 분은 문학 밴드를 통해서 알게 된 분인데, 이 분과는 아직 전화 통화조차 해 보지 않은 관계이다.
그저 밴드에서 댓글로, 그리고 대화 창에서 인사 정도를 나누고 있는 분이다.
이 분의 댓글은 깊은 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늘 대할 때 마다 적지 않은 감동을 받곤 하는데, 역시 이 분께도
시집을 보내 드리고 싶어서 문자를 드렸더니 직접 구해 보겠노라 답을 주신다.
하지만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시집, 아시겠지만 요즘 서점에서 시집을 구매하는 독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
다수의 시인들(특히 나처럼 이름 없는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사장시킬 수 없어 묶어 내거나, 지인들과의 나눔을
위해 출간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기에 내 시집 역시 출간 후 잠시 인터넷 서점에 얼굴을 드러냈다가 곧
지워졌으니 구할 수는 없는 일.
다시 물어 내 시집을 보내 드렸다. 그리고 곧 그분에게서 문자가 왔다. 시집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며 계좌를
묻는다. 나는 답하기를 후에 기회가 된다면 차 한 잔, 술 한 잔이면 족하다고, 그리고 며칠 후 그분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분이 거주하시는 곳이 호남의 항구도시인데, 마침 완도에 출장 갈 일이 있어 가는 길에 내게 수산물을
조금 보내며 그 수산물 사이에 시집 대금도 보냈다는,
그런데 그 날, 3월 5일 논산에서 오신 분과의 점심 식사를 한 그 날 늦은 시간, 아들 학원 일 돕기를 끝내고 아파트
현관 앞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내 눈에 보이는 작지 않은 박스 하나. 부피로는 내가 받아 본 택배 중 가장
큰 것이었고, 내용 물 역시 내가 받아 본 물품 중에 가장 양이 풍부한 것이었으니, 완도 김, 미역, 그리고 다시마
였고 미역 비닐봉지 사이에 꼼꼼하게 부착시켜 놓은 돈(금액을 알리는 것은 그 분께 실례가 될 것이다), 그 금액도
내 예측을 훨씬 벗어난 금액이었다.
그분께서 보낸 수산물의 양으로는 글쎄? 아내와 두 식구가 먹으려면 한 해로는 부족할 것 같아보였다.
아내는 남편 때문에 받게 되는 이런 호사에 늘 감격해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 두 아들 집에도 나눠 주어야
겠다, 는 그 말 속에는 은근한 자랑이 숨어 있었다.
내가 이런 고마운 마음을 받을 때마다 내 생각을 채우는 글, 그것은 기역과 리을 사이이다. ‘ㅣ’를 기역과 리을
사이에 세우면 길이 되고 눕히면 글이 되는, 이 아름다운 한글의 위대함이 나로 하여금 길에 서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어 주며, 그렇게 쓰는 글이 이런 고마운 인연을 맺도록 해 주고 있으니,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며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한글을 위해 존재하는 자임을 되새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분의 선물을 받으며, 논산 탑정 호에 아시아의 가장 긴 출렁다리가 건축되고 있으니, 올 해에는 여름휴가를
호남의 항구 도시로 가서 가까운 섬에 들러볼까 싶은 생각과 가을에 낙엽을 밟으며 출렁다리를 건너는 즐거움을
만나야 겠다는 나름의 일정을 생각해 보는데, 이런 계획은 늘 착오가 있는 것이라서(나의 여행은 문득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 맞추고, 내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다녀올 수 있는 곳을 가기 때문이다.) 그 때 가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마음으로는 그렇게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이다.
그저 고맙다. 우선은 내 어설픈 글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리고 그 어설픈 글을 즐겁게 받아 주는 독자들께 너무
감사하고, 그런 독자들의 관심에서 나오는 여러 방식으로 내게 베풀어 주시는 그 모양들이 너무 기쁘고, 글을
쓴다는 것에 자부심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다시 그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허리 숙여 드리는 바이다. (2021년 3월 7일)
*여행은 1. 시간 있을 때 떠나라. 2. 가용 가능한 돈으로만 하라. 3. 가장 싸고 느리게 하라. 그러면 만 원으로도
가능하고, 어제 갔던 곳에서도 또 다른 글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