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 한 장 -17회-
그렇다 소재는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이 낮은 곳과 골을 따라 그 형태를 무수히 많은 모습으로 변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소설은 물과 같은 소재를 만남으로 다양한 내용의 글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작가의 성향과 경험과 학식과 이념 같은 작가 개인의 취향과 방식에 따라 수많
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빈 캔을 버리려고 하다가 막상 버리려니 버릴 만 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시 빈 캔을 비닐봉지
에 담아 한 손에 들고 일어서려다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두 여자는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이다.
나는 일어서서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털고 담배를 한 가피 피워 문다. 어느새 해는 강 건너 산등선을
물고 넘어가려고 한다. 강의 반 정도에 그늘이 진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그늘 속으로 들어가니 더욱
추워 보인다. 천천히 돌아서서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큰길가로 나오는데 한 무리의 군인들이 손뼉에 발을 맞추며 구보를 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며
하는 운동일 것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때에는 기상 점호를 마친 후에 구보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세면
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었다. 아마 겨울이기에 새벽 구보보다는 오후 구보로 변경하여 운영의 묘를 살
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보를 하는 군인들이 지나가는 동안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저녁 식사 시간을 지켜야 하겠다는 생
각이 든다. 이곳에 와서 민박을 하는 동안 내 편한 데로 식사를 했기 때문인데 그런 것들이 부인에게는
불편한 일이 되었겠다. 는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군인들의 구보를 보면서 생각난 것일 수도 있다. 군인들의 식사는 정한 시간에 함께 식당으로
가서 먹어야만 했고 그 시간이 지나면 취사장에 가서 눈치 보면서 얻어먹거나 아니면 굶거나 그도 아니
면 다른 방식으로, 예를 들면 라면을 끓여 먹거나 PX에 가서 빵을 사 먹거나 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길을 건너기 전 슈퍼에서 소주를 두 병 산다. 반주로 마시든지 아니면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잔 하고 자
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길을 건너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민박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명희인 것이 확실한데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이다. 하지만 나는 곧 알아차린
다. 명희의 어머니라는 것을, 이곳에 온지 꽤 여러 날이 지나고 있었지만 저녁 식사 시간에 명희가 따로
식사를 차리면서 엄마와 먹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가 명희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을 조금 빨리한다. 두 여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간 후 곧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
“아! 선생님, 어디 다녀오세요?”
명희가 나를 보더니 조금 놀라는 눈빛으로 물었다.
“명희구나. 바람 좀 쐬고 오는 길이다.”
“그러세요.”
명희는 대답을 하면서 곁에서 조금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여자를 보더니
“엄마! 우리 집에 며칠 다니러 오신 선생님이셔, 작가님이시래.”
긴장했던 여자의 표정이 명희의 말을 들으면서 놀란 얼굴이 된다. 나는 여자의 표정을 보면서 무엇 때문
에 긴장을 하는지 그리고 왜 놀라는지가 궁금해졌지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는 것으로 첫 대면을 한다.
“엄마, 들어가자.”
명희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들면서 엄마라는 여자를 부축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