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진 한 장 -39회-
선영씨, 명희의 엄마, 그 여자는 박 승준이라는 남자와 어떻게 헤어졌을까? 국문학을 전공하는 남자
였다니 지금은 문단에서 어느 정도 활동을 하고 있을 텐데, 소설을 쓰면서 인터넷을 통해 박 승준이라
는 이름을 검색해 보아도 전혀 그에 맞는 이름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소설 내용처럼 국문학을 하던
남자가 교통사고 때문에 죽음으로 정말 선영이라는 여자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지금의 삶을 살게 되
었을지도 모른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그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제공 해 준 인생이라는 이름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일
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신기하다는 표현이 때로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고 보면,
신이 나에게 숨겨있는 실화를 이런 기회에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종교인들의 신앙처럼 신이
존재하고 있다면 말이다.
탑골 공원 사이의 좁은 골목은 차 한 대가 지나가면 행인이 곁으로 비켜주어야 할 정도의 넓이였다. 그
런 좁은 골목에도 어김없이 노점상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장사를 한다. 액세서리 노점으로부터 구두수선,
어묵장사 등, 하지만 점심시간은 지난 지 오래 되었고 퇴근 시간이 되려면 아직도 조금 남아있는 나른한
오후의 골목은 한산했다. 마산 아구탕 이라고 빨간 색으로 이름을 쓴 식당 간판이 조금 어색하게 보인다.
식당 문 앞에 서 있던 중년의 여자는 앞치마를 허리에 두른 채 두 세 명이 어울려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면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너무 이른 시간에 사무실로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녁 먹기로 했으니 그렇게 보면 이른 시간
인 것은 맞다. 차라리 어디 커피숍이라도 가서 잠시 앉아 있다가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커피숍 간판을 보면 굳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나는 걸음을 천천히 하며 별스럽게 보이지도
않는 골목 풍경들을 눈에 담기라도 하듯 구경하면서 사무실 방향으로 걷는다.
하지만 아무리 천천히 걷는다 해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무심문학 사무실은 곧 눈앞에 들
어나고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입을 벌리고 있다. 사무실로 올라가기 전 나는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하는
것처럼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이 빨아들인다. 폐는 담배 연기가 들어가자 후련해지면서 가벼
워지는 느낌이다.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끈 후에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래된 계단은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때가 잔뜩 껴있고 어느 계단은 껌이 시커멓게 들어붙어 있다. 사무실 안에는
박 은교시인 혼자 앉아서 노크 소리에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손을 내민다. 나도 가볍게 웃으면
서 그의 손을 잡는다.
11
“시인님!”
그는 이미 적당이 취해있었다. 식사를 겸한 술과 식사 후 룸살롱에서 마신 양주는 나와 박시인을 어느 정도
취하게 하고도 남는 양이다. 늘 소주를 즐겨 마시는 나에게 룸살롱의 양주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고, 그것은
박 시인에게도 마찬가지의 자리였지만 오늘따라 굳이 이차를 아가씨 있는데서 양주를 마셔야 하겠다고 고집
하는 그의 고집을 나는 꺾지 못했다. 아니 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식당에서 식사를 겸한 소주를 마시는 모습에
서부터 그에게서 평상시의 박 은교시인과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예!”
나는 짧게 대답을 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일까? 그것이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 생각을 사로잡
고 있었다.